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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습니다. 스파르타 ..
by 여형사 at 01/05 300명이라는 건 '스파르타.. by 9625 at 01/05 ㅎㅎ by 여형사 at 01/04 강유원 박사의 강의를 .. by 여형사 at 01/04 저는 아킬레우스가 훌륭.. by 9625 at 01/04 "저자와 같은 실무자들은.. by Gomting at 01/01 1. 다시 글을 남기실지 .. by 여형사 at 12/08 책에 대해서 코멘트 하시.. by 이은혜 at 12/07 저 같은 경우는 이마미치.. by 여형사 at 12/04 저 역시 신곡 읽겠다고 덤.. by 신곡읽는중 at 12/04 |
1. '책세상'에서 니체 전집을 발간하고 있다고 들어서 출판사 홈페이지에 가보니 이미 2005년에 전집이 완간되었다. 익히 알려진 니체의 저작뿐 아니라 그의 유고까지 포함하고 있는 전집이라고 한다. 내가 읽은 것도 책세상의 2005년 발간본으로 반시대적 고찰과 함께 묶인 전집 제 2권이다. 나는 비극의 탄생만 읽었다.
2. 28살의 나이에 쓴 '비극의 탄생'은 1872년 <음악 정신에서의 비극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86년 <자기비판 시도>를 머릿글에 넣어 <비극의 탄생 또는 그리스정신과 염세주의>로 제목을 바꾸어 출판되었다고 한다. (출처) 특히 자기비판의 시도는 니체가 스스로 나중에 책에 붙여넣은 비극의 탄생의 서문(혹은 후기)으로 비극의 탄생을 쓸 당시의 문제의식에 대해서 놀랍게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니체의 책이 이번이 세번째인데 뭔가 통째로 알아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단지 서문일지라도! 3.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정리하는 정도로는) 2가지 이다. 하나는 [반기독교적 정신]으로서의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반 주지주의]로서의 역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니체는 기독교를 극히 증오하였다. 그냥 개독교라서 잘 먹고 잘사는 것 조차 꼴보기싫은 한국 교회를 비판하는 시점이 아니라 기독교가 강요하는 '도덕적인것'에 대해 혐오하였다. 니체는 기독교의 도덕이 실제 우리의 삶을 '부정하고 저주하고 유죄판결을 내린다'라고 생각했다. 그의 유명한 명제 '신은 죽었다'는 이런 차원의 이야기이다.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원래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해 긍정하고 또한 이를 넘어서려는 중간 과정으로서의 인간의 삶을 긍정하였기에, 애초부터 삶을 단죄하고(우리는 원래 죄인이라는 기독교의 원죄론) 부정하는 기독교의 도덕과는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루터와 같은 기독교 개혁이 독일에서부터 출발한 점을 고려해보면 니체가 기독교를 거부한 사회적/역사적 맥락도 좀 궁금해진다. 한편으로 주지주의(혹은 이성주의)는 그리스 정신의 원류였던 음악 혹은 그에서 기원한 비극의 생동감을 억누름으로써 비극의 종말을 가져 오고 결과적으로 그리스 문명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역시 내가 이해한 버젼) 플라톤은 마신적인 소크라테스의 압력에 의하여 시가를 그런 지위로 전락시킨 것이다. 여기서 철학적 사상은 예술을 감시하고 예술로 하여금 변증법의 줄기에 밀착할 것을 강요한다. 아폴론적 경향은 논리적 도식주의로 변질되었다. 우리는 에우리피데스에게서 이와 유사한 상황을 관찰할 수 있으며, 그 밖에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자연주의적 격정으로 변했음을 인지할 수 있다. 4. 이렇게보면 니체는 서양의 두가지 형이상학적인 거대 영역 - 기독교와 이성주의 -모두에 대해서 반론을 펴고 있는 셈이다. 도덕의 계보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듣기로는 그는 삶 자체를 긍정하고 신을 배제한 이후의 인간에 있어서의 허무주의를 극복함을 일생의 과제로 여겼다고 한다. 어떤 목적 (하느님의 영광, 구원 등등)을 위한 삶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것에도 목적이 있음을, 그리고 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음을 말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어쩌면 현대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당연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에서는 누구도 사람의 삶에 의미가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는데다가 겉으로는 모두 인간이 최고다 혹은 인간이 모든 것의 기본이라는 '인본주의'가 보편적인 도덕율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최저임금 110원 올리는데 먼저 고려가 된 것은 사람일까? 밤 10시 이후 학원 과외를 금지한 것에 '교육권'을 내세워 헌법 소원을 내는 사람들이 먼저 생각한 것은 사람일까? 자살을 해서라도 죄를 갚으라는 김동길은 뭘 먼저 생각했을까? 니체 당대에 삶을 가장 억압하던 것 중의 하나가 기독교였다면 지금은 분명 '돈'이다. 모든 것이 돈을 위해 움직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나 혹은 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모두들 전력을 다 한다.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 같다.
1. 우선 책 이야기 먼저. 이 책은 도덕의 계보학 전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을 발췌한 편역본이다.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전체가 번역된 다른 책을 샀을 텐데 구매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기가 어려웠다. 아쉬운 부분.
2. 전체의 1/3정도만 포함되었기 때문에 분량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내용이 이해하기 쉬운 것은 물론 아니다. 내가 이해한 부분은 이 정도이다. 양심 혹은 도덕이라고 불리는 것은 기독교 그리고 국가에 의해 인간에게 강제된 것이다. 따라서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선에 의한 판단기준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종교나 국가권력에 의해 규정된 것이므로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이를 초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초월하는 사람이 차라투스트라라고 표현되는 초인이다. 맞게 이해했나 싶은데... 암튼 내 머리로 재구성되는 부분은 이정도이다. 니체의 다른책에 비해 비유적 표현이 적고 직설적이고 논리적 구성을 염두에 둔 표현방식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전체의 70%정도는 '이게 뭔 소리지?' 싶다 ^^; 다만 차라투스트라와 연관지어서 초인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부연설명 같은 생각이 든다. 초인이 인간의 자유를 역설한 배경에 대한 부연설명이랄까? 3. 기억에 남는 몇 구절을 인용해 둔다. 적개심, 잔임함, 박해에서의, 습격에서의, 변화에서의, 파괴에서의 쾌감 - 이러한 본능들의 소유자에 대항해서 이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 그것이 '양심의 가책'의 원천이다. (64쪽) 나는 '국가'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하다. 그것은 전투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조직력을 가지고, 아마도 수적으로는 엄청나게 우세하지만 아직 형태를 가지지 못하고 여전히 떠도는 주민에게 주저하지 않고 무서운 발톱을 내민 어떤 금발의 맹수 무리, 정복자 종족, 그리고 지배자 종족을 의미한다. 실로 '국가'는 지상에서 그렇게 시작된다. 내가 생각건대, 국가를 '계약'과 함께 시작하는 것으로 여긴 저 몽상은 끝내 막을 내렸다. (66쪽) (사회 계약론에 대한 적절한 반박, 필자가 추가함) 그리고 내가 처음에 말한 것을 결론적으로 다시 한 번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여전히 인간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보다는 기꺼이 무(Nichts)를 바란다. (114쪽)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 또는 대자유도 결국 허무를 욕망한다는 비판으로 읽힘. 한편으로 생각하면 니체가 말한 초인과 선승들이 이야기하는 부처 혹은 깨달음 이라는 영역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한번 이야기 했는데.. 니체는 평생 두통에 시달렸고 뇌연화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승들이 흔히 겪는 상기병(화두를 무리하게 생각하다 생기는 두통)이 니체에게 생긴것이 아닌가 하는 내 멋대로 추측도 해본다. 역시 필자가 추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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