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츠카 아키라(지음), 박맹수(옮김), <1894, 경복궁을 점령하라!), 푸른역사, 2014(3쇄)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 3권의 제목이 <청일, 러일전쟁>인데, 이 책에 따르면 1894년의 청일전쟁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즉 1) 7월 23일의 조일전쟁, 2) 협의의 청일전쟁 3) 대만정복전쟁(1985년)인데, 선생님은 대만정복전쟁 전에 약 3만에서 5만명의 갑오농민전쟁의 농민군을 학살한 농민섬멸작전도 포함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어쨋듯, 첫번째 7월 23일의 조일전쟁은 어지간히 역사를 공부한 사람도 낯설게 느껴지는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이 바로 7월 23일의 조일전쟁, 즉 일본군의 경복궁 범궐사건이다. 

경복궁 범궐사건이란 청일전쟁의 명분을 만들면서 전쟁에서 조선 정부의 지원을 강요할 목적으로 일본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건인데 책의 본문에 따르면, 

"결국 왕궁점령은 조선의 국왕 고종을 사실상의 포로로 삼고, 왕비 일족과 대립하고 있던 대원군을 떠받들 정권을 잡게 함으로써 조선 정부를 일본에 종속시켜 청나라 군대를 조선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계획되었다. 즉 '개전 명분'을 손에 넣고, 나아가 서울에 있는 조선 군대를 무장 해제시킴으로써 일본군이 남쪽에서 청나라 군대와 싸우는 동안 서울의 안전을 확보하고, 동시에 군수품 수송과 징발 등을모두 조선 정부의 명령으로 시행하는 편의를 얻는다는 목적 아래 계획된 것이었다." (2장 조선왕궁점령의 실상, 65쪽)

중요한 점은 이렇게 의도적인 목적을 갖고 시행된 작전이 일본 정부의 역사 조작에 의해 공식적인 역사에서는 '한병(조선군)이 먼저 발포하여 국왕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경복궁에 침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청일전쟁에 대한 공식적인 역사 기록인 <일청전사>의 초안이 담긴 1965년의 사토문고를 발견하여 이를 분석함으로써 이와 같은 논증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일본의 역사 조작은 이때부터도 안하무인격이자 조직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역사 왜곡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인 <편찬강령>을 두어 일본제국에 불리한 내용은 절대로 수록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인의 상당수가 여전히 조작된 역사를 실제 역사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중일전쟁과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2천만명 가까운 인명을 살상한 '사죄하지 않는 일본'의 기원이 역사 조작과 천황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한 것에 기원한다고 지적하는데, 책의 본문에 따르면, 

"따라서 패전 이후에도 구지배층 내부의 세력 교체만 있었을 뿐, 천황, 황족, 중신, 관료의 모든 체계가 예전대로 중앙정권으로서 통일을 유지하였으며, 미국 점령군에 종속되면서도 일본 정부로서 국민을 계속 지배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천황제 전제 지배는 수정되었지만,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구지배 체제는 잠시 군사력만을 잃었을 뿐 대부분 붕괴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렇게 해서 천황의 전쟁 책임은 면책되었고 그렇게 됨으로써 일본에서는 2차세계대전 이전의 군국주의 사상이 변함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는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면서 '사죄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추악한 체질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 (7장, 역사 위조가 남긴 후유증, 231쪽)

본문에도 언급되듯 엥겔스의 말처럼 '타민족을 억압하는 국민은 자기 자신도 해방시킬 수 없다"는 말이 천황제 아래 일본이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덧글

  • 2018/06/04 12:2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여형사 2018/06/04 18:35 #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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