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지음), 홍기빈(옮김), <거대한 전환>, 길, 2009(3쇄)

"19세기 문명은 외부 혹은 내부의 야만인들의 공격으로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그 문명의 생명력을 잠식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황폐화도 아니었고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나 파시스트 하류 중산 계급의 반란도 아니었다. 그것이 붕괴한 것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든가 과소 소비 혹은 과잉 생산과 같은 이른바 경제 법칙 같은 것들의 결과도 아니었다. 그것이 해체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원인이 있었으니, 그것은 자기 조정 시장의 활동으로 사회가 절멸당하지 않기 위해 취해진 여러 조치들이었다. 아직 서부 개척지가 남아 있던 시기의 북아메리카에서 존재했던 것과 같은 예외적 상황을 뺀다면, 19세기의 사회적 역동성을 제공하고 19세기의 사회를 결국 파괴해버렸던 전형적인 긴장과 갈등을 낳았던 것은 조직된 사회적 삶의 기본 요건들과 시장 사이의 갈등이었다. 대외적 전쟁들은 그저 그 파괴의 속도를 앞당겼을 뿐이다."(21장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 586쪽)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마침내 산업과 정치 제도가 충돌하여 사회 전체가 마비될 사태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 대한 파시즘의 해결책은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 산업 영역과 정치 영역을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적 제도들을 깡그리 뿌리뽑아버릴 것이며, 그것을 대가로 삼아 시장경제를 개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붕괴의 위험에 처한 경제 제도를 소생시킬 것이며, 그런 가운데 인민들은 재교육 과정을 밟게 될 것이었다."(20장 사회 변혁과 역사가 맞물려 진행되다, 566쪽)


"이 결정적인 10년 동안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오로지 디플레이션을 이루기 위한 정책들만 완고히 고집하여 권위주의적인 정부 개입주의까지 지지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결과 민주 세력들이 결정적으로 약화되었고, 이렇게 민주 세력이 극적으로 약화되는 바람에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을 파시즘적 파국이 현실화 되는 것에 일조했던 것이다."(19장 인민 정부와 시장경제, 559쪽) 


"이러한 방식으로 시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긴장은 시장과 다른 주요 제도적 영역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상황에 따라 어떤 때에는 정부 영역의 작동에 어떤 때에는 금본위제의 작동에 또 어떤 때에는 국제 정치의 세력 균형 체제의 작동에 그 긴장을 옮겨갔다."(18장 체제 붕괴의 긴장들, 524쪽) 


"자기조정이 망가진 것은 보호주의의 결과이다. (507쪽) 

따라서 미국은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과 부정적인 방향 모두에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것에는 결국 사회적 보호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우리의 핵심 주장을 입증해주는 충격적인 증거가 되었다.(509쪽) 

무역을 하게 되면 서로서로 이익을 본다는 주장은 이론으로야 빈틈없는 것이겠지만,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이를 재빨리 깨닫지 못하거나 아마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이들에게 자유무역의 이상을 설파하는 데에는 폭력밖에 길이 없었던 것이다... 몇천 년에 걸쳐 자신들의 자연적 욕구를 나름의 방향으로 발전시켜온 원주민들의 마음속에 유럽의 공산품들에 대한 불타는 욕망이 불현듯 소아나 그것을 얻기 위해 제발로 자기들의 자원을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는 예정 조화 따위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519쪽) (17장 자기조정기능, 망가지다) 


"시장경제의 파괴가 가장 급작스럽게 나타난 곳이 바로 화폐 영역이었다. 다른 어떤 시장에서도 1931년 9월 21일에 일어난 영국의 금본위제 포기는 물론이고, 그로 촉발된 1933년 6월 미국의 마찬가지 조치에 비견할 만한 대사건은 생겨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금본위제의 최종적인 실패는 바로 시장경제의 최종적인 붕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가 시작된지 100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그 동안 시장경제는 보호주의의 반작용에 부닥치게 되었고, 이제 그것이 시장경제의 마지막 보루에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다. 자기조정 시장의 세계는 이제 사라지고 새로운 사상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급자족의 고립주의를 내세운 정치 세력이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은 채 곳곳에서 폭발적으로 터져나와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앞세워 다수는 이러한 사태 앞에서 넋을 놓고 명연자실한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16장 시장과 생산 조직, 500~501쪽) 


"시장경제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응과 농민의 대응은 모두 보호주의라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전자는 주로 사회 입법이나 공장법의 형태를 띠었고 후자는 국내 농업 진흥을 위한 보호 관세와 토지 관련법의 형태를 띠었다...토지와 관련된 사회 계층들은 시장 체제와 타협하는 방향을 지향했던 반면, 넓은 의미의 노동계급은 시장 체제의 여러 원칙들을 거침없이 깨어버리고 그것에 공공연하게 도전하는 일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15장 시장과 자연, 485~486쪽) 


"경제적으로 보자면 영국과 유럽 대륙의 사회 보호 방법은 거의 동일한 결과를 가져왔다. 양쪽 모두 얻고자 했던 것을 얻어냈으니, 그것은 노동력이라고 알려져 있는 생산 요소가 거래되는 시장을 무너뜨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노동 시장이라는 것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려면 물가 수준이 하락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임금이 떨어지도록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적 용어 대신 삶의 언어로 이 말을 다시 해보자. 이는 노동자들의 소득이 극도로 불안정하게 되고, 직업적 전문성이 완전히 사라지며, 오로지 시장의 변덕에 휘둘리고, 그저 일자리와 높은 임금을 좇아 양떼처럼 이리저리로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항상 엉덩이를 땅에서 뗀 채 사방의 눈치를 살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14장 시장과 인간, 462쪽) 


"우리는 일단 두 가지 견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첫 번째, 현실에서 힘을 갖게 되는 것은 오로지 분파적 이익뿐이며 사회 전체의 전반적 이익이란 결코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와 쌍둥이 처럼 붙어 있는 것으로, 인간 집단의 이익을 오로지 화폐 소득만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생각이다."(13장 자유주의 교리의 탄생 2, 계급적 이해와 사회 변화, 417쪽) 


"이 기묘한 역설을 능가하는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자유방임 경제가 의도적인 국가 활동의 산물이었던 반면, 그 뒤에 나타났던 자유방임 제한 조치들은 완전히 자생적으로 시작된 것들이었다."(12장 자유주의 교리의 탄생, 394쪽) 


"앞에서 이중적 운동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되돌아가보자. 이것은 사회안에서 작동하는 두 가지 조직 원리의 활동으로 인격화할 수 있다... 첫째 원리는 경제적 자유주의로서, 자기조정 시장의 확립을 목적으로 사업에 종사하는 사회 계급의 지지에 의존하며, 대체로 자유방임과 자유무역이라는 방법을 택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 보호의 원리로서 인간, 자연뿐만 아니라 생산 조직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시장의 해로운 운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 즉 주로 노동계급과 토지 계급의 다양한 지지에 의존하며, 보호 입법, 경제 규제를 위한 연대 및 기타 경제 개입의 수단들을 방법으로 삼는다." (11장 인간, 자연, 생산 조직, 381쪽) 


"자기 조정시장이라는 체제가 무자비한 자연 법칙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으로 믿어지게 된 이상, 시장의 모든 족쇄를 풀어놓는 일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필연이라고 여긴 것이다. (365쪽) 

한마디로 진정한 문제는 예전에 그의 경제적 존재가 묻어들어 있었던 자연과 인간과의 여러 관계들이 완전히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으며, 빈곤 문제란 이 거대한 사태의 경제적 측면에 불과하다. 오언은 입법을 통한 개입과 방향 제시로 이 파괴적인 힘과 맞서지 않는 한, 실로 거대하고 영구적인 사회악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날 것이라는 올바른 주장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369쪽) 10장 정치경제학과 사회의 발견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기 그들(빈민)을 하나의 '협회'(college) 또는 법인(corporation)으로 조직하여 자신들의 노력과 노동을 하나로 합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뿐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훗날 빈곤 문제에 대한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 사상의 심장을 이루는 생각이다. 오언의 '협동조합촌'(Villages of Union), 샤를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프루동의 '교환은행', 루이 블랑의 '국민작업장', 라살의 '국영 공장'은 물론, 이점에 관한 한 스탈린의 '5개년 계획'조차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간다. 기계가 출현하고 그로 인한 현대 사회의 거대한 혼란이 처음 생겨난 이래 이 빈곤 문제에 대해 수많은 해법이 제시된 바 있지만, 대부분 제안들의 핵심 아이디어는 밸러스의 책에 응축된 형태로 담겨 있는 것이다." (9장 구호 대상 극빈자 문제와 유토피아, 327~328쪽) 


"스피넘랜드 법이 철폐된 날이야말로 근대적 노동계급의 진정한 탄생일이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근대적 노동계급은 기계 문명에 내재한 위협에서 사회를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직접적 이익으로 삼는 운명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태어났다. 하지만 이는 미래에 벌어질 이야기이며, 지금으로서는 노동계급과 시장경제가 역사적으로 동시에 태어났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8장 스피넘랜드 법 이전의 것들, 스피넘랜드 법의 결과들, 317쪽) 


"결정적인 핵심은 다음과 같다. 노동,토지,화폐는 산업의 필수 요소이며, 이것들도 시장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사실 이 시장들이야말로 경제 체제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그러나 토지, 노동, 화폐는 분명 상품이 아니다.... 이들 어떤 것도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구이다.(243쪽) 

시장 매커니즘을 노동, 토지, 화폐라는 산업 요소들에까지 확장하게 된 것은 상업 사회라는 틀에 공장제를 도입하면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인간 사회는 이제 모든 면에서 경제 체제의 부속물이 되어버렸다."(247쪽), 6장 자기고정 시장 그리고 허구 상품 : 노동, 토지, 화폐 


"경제 체제는 일반적인 여러 사회 관계 속에 잠겨 있었고, 시장은 단지 당시의 제도적 구조에 딸려 있는 특징 이상이 아니었으며, 그 제도적 구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의 권위에 의해 통제 및 규제되고 있었다." (5장 시장 패턴의 진화, 228쪽) 


"19세기 내내 학문의 이름으로 지겹게 울려퍼졌던 주문의 염불과는 달리, 교환을 통해 이익과 이윤을 얻는다는 동기가 인간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181쪽) 

인간은 물질적 재화의 소유라는 개인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행동하여 지키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 사회적 권리, 사회적 자산이다.(185쪽) 

넓게 보자면 우리에게 알려진 바의 서유럽 봉건제가 끝나는 시점까지 존재했던 모든 경제 체제들은 상호성 원리, 재분배 원리, 가정 경제의 원리 혹은 이 세 가지 원리의 조합을 통해 조직되었다는 것이 이 장의 논지이다."(199쪽) 4장 사회와 경제 체제의 다양성 


"기계에 의한 생산이 상업 사회에서 일어나면, 현실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적, 자연적 내용물이 상품의 형상을 뒤집어쓰게 된다는 실로 엄청난 변화가 벌어진다... 이로 인해 인간의 상호 관계가 마디마디 끊어질 수밖에 없으며, 인간이 삶을 영위할 자연환경도 반드시 쑥밭이 될 수밖에 없음이 명명백백하다는 것이다." (3장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179쪽)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경제는 해체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서면 문명 전체가 전환을 겪게 된 바, 이 둘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고리는 바로 국제 금본위제의 붕괴였다. (134쪽) 

그렇지만 19세기 문명이 경제적 문명이었다는 말은 이와 완전히 구별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말은 오로지 19세기 문명만이 인간 행동의 무수한 동기들 가운데에 역사상 어떤 인간 사회에서도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되는 법이 거의 없었던 동기, 더욱이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준까지로는 결단코 올라선 적이 없는 동기를 스스로의 기초로 삼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기란 바로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체제는 바로 이러한 동기에서 도출된 체제라는 점에서 독특하다."(152~153쪽) 2장 보수적인 1920년대, 혁명적인 1930년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이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보호 조치이든 취하는 족족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을 망가뜨리고 산업의 일상적 작동을 혼란에 빠트렸기에 사회는 또 다른 방향에서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시장 체제의 발전 과정은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가게 되었고, 결국에는 자신을 기초로 삼는 사회 조직마저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장 백년 평화, 94쪽) 


"인간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위치는 19세기 특유 - 자유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함께 나타난-의 '경제주의적 편견'에 의해 크게 오해받아왔다. 인간은 모두 자기의 이익이라는 '경제적 이해'로 움직이는 존재이며, 따라서 그렇게 구성되는 시장경제의 경제 법칙이야말로 전 역사에 걸쳐 모든 경제와 나아가 사회까지 지배한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당시 최신의 경제 인류학 및 고대 중세사의 성과를 빌려 이러한 관념이 19세기인들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철저히 논증한다. 경제는 사회 과정에 '묻어 들어'(embeded)있는 것이며, 특히 시장경제는 인류 사회의 보편적 경제 형태이기는커녕, 최소한 200년 전까지는 어디서나 '부수적 존재'로 철저하게 억압되어왔다는 것이다. 개인의 이윤 동기로 조직되는 시장이라는 형태는 16세기 영국에서처럼 자유롭게 풀려날 경우 급속도로 사회와 인간과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경제 활동을 완전히 시장 제도 하나만으로 조직하여 그것으로 자기 조정 시장을 세운다는 것은 적어도 지난 수천 년 수만 년의 인류사에 비추어보면 '자연적'이기는커녕 극히 인위적인 유토피라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옮긴이 해제, 6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