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이치사다(지음), 전혜선(옮김),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역사비평사, 2016

               (본문 11쪽)

중국의 과거제도가 얼마나 복잡했는지는  위 도표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과거시험을 예비시험과 본시험 정도로 생각한다면 중국의 과거제도를 크게 오해하는 셈이다. 시험을 볼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도 여러번 치러야 했으며 본 시험도 마찬가지였으니 '나이 50에 합격에도 이르다'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제도가 중국 및 조선 등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기본적으로 국가 관리를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는 발상 자체가 중국에서 기원하며 조선은 이를 과정만 조금 달리한채 그대로 들여왔다. 학문의 성과를 국가에서 평가한다는 생각은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의 획득을 공부의 목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현재 한국인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제도가 역사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가? 과거라는 말의 기원을 보면, 중국에서는 관리 등용을 선거選擧라 했는데, 시험에는 여러 종류의 과목이 있었으므로 '과목에 따른 선거'를 줄인 '과거'라는 용어가 당대에 성립했다고 한다. 과거 제도의 시행은 용어의 성립보다 앞서는데, 최초의 과거는 587년 수문제 시절에 구품관인법을 철폐하고 시행되었다. 수문제가 과거를 실시한 이유는 '전대의 세습적인 귀족정치에 타격을 입히고 천자의 독재권력을 확립하는데 있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소수의 독점적인 귀족들이 관직을 독차지하던 이전 시대의 관습에 비해 과거 제도는 시험을 통해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했다는 긍정적인 면을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과거 시험이 실시되던 시대의 유럽은 이제 경우 봉건적인 기사제도가 틀을 잡아가던 시기로 과거제도는 '차원을 달리할 만큼 진보한 제도이며, 당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이념을 갖고 있었다'(220쪽)고 할 수 있다. 

반면 실제 채용 인원이 너무 적었고, 과거 자체가 정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실제 시험에 필요한 비용을 감안하면 일부 부유층에게만 한정되었다는 한계도 갖는다. 특히 국가가 비용이 많이 드는 공교육 기관을 통해 관리를 양성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과거 제도에 의존함으로써 실무적으로 별다른 능력을 갖지 못한 지식인들이 관료에 임용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런 결과는 근대에 들어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1872년 학제를 반포하고 학교를 세워 서구의 신교육을 시작하여 동아시아의 패권적 지배권을 확보한 반면, 청은 1904년에야 과거를 폐지하였고 6년 후에 청도 멸망한 것에서 단면적으로 엿볼 수 있다. 물론 청의 쇠락이 과거 제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덧글

  • 약간뚱보 2017/01/04 14:55 #

    여전하신 여형사님의 방대한 독서와 정리. 새해에도 이어지시겠네요.
    여형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쇼.^^
  • 여형사 2017/01/11 16:07 #

    아이고 팀장님, 이게 얼마만인가요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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