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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습니다. 스파르타 ..
by 여형사 at 01/05 300명이라는 건 '스파르타.. by 9625 at 01/05 ㅎㅎ by 여형사 at 01/04 강유원 박사의 강의를 .. by 여형사 at 01/04 저는 아킬레우스가 훌륭.. by 9625 at 01/04 "저자와 같은 실무자들은.. by Gomting at 01/01 1. 다시 글을 남기실지 .. by 여형사 at 12/08 책에 대해서 코멘트 하시.. by 이은혜 at 12/07 저 같은 경우는 이마미치.. by 여형사 at 12/04 저 역시 신곡 읽겠다고 덤.. by 신곡읽는중 at 12/04 |
1. 살림지식총서 173번으로 나온 100쪽이 안되는 작은 문고판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각 분야에 걸쳐서 비교/요약한 책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해 관심있는 분이라면 사전 학습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듯 하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고대 문명의 두 중심지 2) 수호신과 종교 3) 축제 4) 운동경기 5) 사회구성과 교육 6) 정치와 군사 7)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인물들 2. 페르시아와의 전쟁 이전까지 고대 그리스 세계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것은 스파르타라고 한다. 강력한 군사력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페르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이 체결되는데 이 동맹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아테네는 점차 동맹 국가들에게 과중한 공납금을 거두게 되고 이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게 된다. 이러한 아테네의 제국화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스파르타는 기원전 431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재밌는 것은 전쟁의 발단이 이 두 국가 사이의 직접적인 분쟁이 아니라 동맹 가입국간의 분쟁으로 말미암았다는 점이다. 마치 냉전시대에 쿠바 위기를 빌미로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벌일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 하겠다. 아무튼 이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계기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국운이 쇠하게 되지만 스파르타도 얼마 가지 않아 몰락하게 되었다. (아마도 알렉산더의 그리스 정복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일 것이다) 3. 스파르타는 무엇보다도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하다.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이를 위해 훈련은 매우 이른 나이, 7세(만 6세)부터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6년간은 파이디온이라는 등급에 속해 있으며, 기초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13세가 되었을 때,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부터 6년간은 아마도 헤본(청소년)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짧게 잘라야 했고, 신발도 신지 못했으며, 단 한 겹의 옷만으로 사철을 견뎌내야만 했다. 잠자리는 에우로타스 강변에서 손으로 직접 뜯은 골풀로 마련해야 했고, 그리 많지 않은 식사량을 보충하기 위해 때로는 먹을 것을 훔쳐야만 했다. 그러다가 붙잡히면 심하게 얻어맞는 것이 예사였다. 훔치는 것이 나쁘다는 도덕적인 면에서의 처벌이 아니라, 단지 붙잡혔다는 이유에서였다. 19세가 되면 에이렌 등급이 되었다. 이때부터는 전투에 나가는 것이 가능했고, 소년들로 이루어진 소대의 감독자, 즉 소대장이 되었다. 24세가 되어서야 정식 전사가 되며, 30새가 넘으면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스파르타가 이렇게 오늘날 시각으로보면 비상식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된 이유도 책에 소개되어 있다. 스파르타는 원주민을 정복한 도리아인들로서 자신보다 약 20배 많은 노예(헤일로타이)를 거느려야 했다. 책에 의하면 이들을 감시/감독하는 사람이 별도로 있었고 평소에도 엄격하게 다루어 행여나 반란을 꾀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되지 않는 스파르타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엄격하게 수련하여 강력한 전사가 되는 것이 국가를 유지하는 주요한 전략이었음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4. 상업이 융성하였던 아테네는 지리적인 원인이 컸다고 한다. 연평균 강수량이 적어 곡물농사에 적절하지 않았던 아테네는 올리브나 포도 등 소위 상품작물을 재배하여 이를 항아리에 담아 외국에 수출하여 곡물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도자기 공업과 상업 그리고 항해술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아테네의 민주정도 여기에서 기원한 점이 크다. 대규모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평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한 것이 아테네 민주정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이런 와중에 같은 평민이라도 빈민과 부자의 차이가 커졌고 이로 인해 계급간의 갈등이 불거졌는데 이를 정리한 사람이 '솔론'이다. 아테네 시민을 재산에 따라 4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공직에 대한 역할을 차별을 둔 것인데 민회에는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으나 상위 공직자에는 재산이 많은 사람들만이 참여하게 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재산에 따른 차별을 두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전쟁이 나면 배를 징발할 부자를 국가에서 지정하기도 했다고 하니 부자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 같다) 5. 책 말미에 영화 '300'의 주인공인 '레오니다스 왕' 이야기가 나온다. 레오니다스는 실제했던 인물이며 그 전투(테르모퓔라이 전투)도 실제였다. 다만 책에 의하면 페르시아 군의 수가 '그 몇배'로 기록된 걸로 봐서 영화처럼 300명대 몇십만의 수준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확인을 해봐야겠다) 아무튼 당시로서는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싸우는 것이 매우 특별한 일이었는데 이에 대해서 헤로도토스는 '명예'와 '신탁'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델포이의 신탁소에서 무녀에게 신탁을 구했을 때 '너희의 왕이나 너희희 영광스러운 도시를 제물로 갖기 전까지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멈출 수 없다는 신탁을 듣고 레오니다스가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는 '화살이 태양을 가려 그늘에서 싸우게 되니 즐겁다'는 말도 실제로 전해오는 말이라고 한다. 책값도 저렴하고 (3,300원) 내용도 적당하고 상황정리용으로 매우 유용한 책이다. 다만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좀 의아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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