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지음), 천병희(옮김), <정치학>, 숲,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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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한국에서는 최초로 그리스 원전에서 바로 옮긴 판이다. 이 책이 씌여진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강유원의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에 박영사 판 정치학의 서문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옮기고 있다.

아테네는 이제 상업과 무역으로 지중해 연안 각처에 식민도시를 거느리는 융성한 도시국가로 발전하였다. 영웅적 군주정, 귀족정, 참주정도 다 사라지고 기원전 3,4세기에는 저 유명한 페리클레스의 민주정도 이제는 추락하여 빈민정의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 이러한 가치전환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 기성가치를 말소함이 없이 오히려 그 속에 새 가치를 첨가시키려고 나온 자가 소크라테스이며, 그 제자가 플라톤이었다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거의 모든 관습, 모든 지식, 모든 인간의 업적을 다시 정리하여 신시대정신, 즉 지식의 시대정신으로 이끌어 놓은 위업을 완수하였다. (95쪽)

강유원의 설명에 의하여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전쟁의 시대를 살았고, 그 혼란을 극복하여 참다운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해 깊이 고민' 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그런 치열한 고민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말미에 붙어 있는 번역자들의 해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정치학과 윤리학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최선의 국가에 대한 물음은 인간 개개인의 행복에 대한 물음을 전제'로 하며 '폴리스는 인간 개인의 행복을 구현하는 근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인이 어떻게 하면 잘 살수 있는가에 대한 탐구가 윤리학의 주제라면 정치학은 이런 개인이 자연적으로 생성하게 되는 공동체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라고 할 것이다.

이 책의 구성과 목차에 대해서는 역시 [서구 정치사항 고전읽기]에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요약하면 이 책은 총 8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도입부분인 1권을 제외하고 2~3권, 7~8권은 그의 사후에 집필된 것으로 주로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대한 비판으로 되어 있다. 반면 4~6권은 이보다 늦게 정리된 것으로 현실 도시국가(폴리스)상의 정치구조를 비교하고 정책론, 혁명론 등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전체를 통독하고 그 중 4~6권은 노트에 간략하게 정리하였는데 이를 다시 정리해보고자 한다. 4~6권이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국가론이 제시된 부분이기도 하려니와 전체를 모두 정리하는 것은 아직 힘든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
4권은 저자가 정치학의 과제와 대상을 규정하고 정체를 올바른 정체와 이에서 왜곡된 정체로 구분한 뒤 각 정체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또한 마지막에는 심의권, 집행권, 재판권 등 근대의 3권 분립과 유사한 권력의 배분과 견제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훌륭한 입법자와 진정한 정치가는 절대적 최선의 정체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최선의 정체에 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통해 1) 어떤 정체가 최선인가, 2) 개별 국가들에 있어 어떤 정체가 적합한가, 3) 그리고 이러한 정체의 생성과 변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시도한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플라톤과 같이 절대적으로 이상적인 정체를 이론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아닌 실제 정체들에 대한 비교와 분석을 통해 보다 현실적인 최선의 정체를 찾아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가장 이상적인 정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혼합정체'이다. 혼합정체는 민주정체와 과두정체가 '혼합'되어 있는 정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따라서 중간 형태의 정체가 최선임이 분명하다. 거기에는 파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산계급이 많은 곳에서는 시민들 사이에 알력이나 반목이 생길 가능성이 가장 적다. 같은 이유로 큰 국가가 파쟁에서 자유로운 것은 그곳에 중산계급이 많기 때문이다. (1296a7)

여기서 중산계급이란 재산에 따른 구분이다. 모든 사람이 공직에 참여하는 정체를 '민주정체'(빈민정이라고도 한다)라고 한다면, 재산의 크기에 따라서 부자들만 참여하는 정체를 '과두정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두가지를 혼합한 정체를 최선의 정체라고 생각했다. 이를 다시 강유원의 해설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부연하여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진 편견을 하나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이들은 어리석다는 것, 달리 말하면 정치를 할 정도의 지식을 갖추려면 일정한 재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권력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정치체제를 분류하는 것에는 동시에 재산의 유무도 관련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109쪽)

2.
체제를 설명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정체를 언급한 다음 5권에서는 이런 정체가 바뀌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정체 변혁의 일반적 원인과 개별적 원인, 민주정, 과두정, 귀족정이 전복되는 이유에 대해서 각각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각 정체를 보존하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체가 바뀌는 원인은 '불평등'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정에서는 '어떤 한가지 점에서 평등하면 모든 점에서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과두정에서는 '어떤 한가지 점에서 불평등(우월)하면 모든 점에서 불평등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각 정체에서 불만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상세하게 구별하여 교만(hybris),  두려움(phobos),  우월성(hyperoche), 경멸(kataphronesis) 등 9가지 변혁의 원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이 중 정체를 계속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따라서 정체를 염려하는 자들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시민들이 정체를 지키느라 경계하며 야경꾼들처럼 경각심을 늦추지 않게 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멀리 있는 위험요소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1308a24)

(참주정치의 보존에 대하여) 이를테면 걸출한 자들을 제거하고, 사람들이 기를 펴지 못하게 하고, 공동 식사 제도와 정치 동아리와 교육 등을 금하고, 피치자들 사이에 자긍심과 상호 신뢰를 낳을 만한 모든 것을 감시하고, 학교나 토론회가 생겨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피치자들이 가능한 한 서로 모르고 지내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1313a34)


3.
6권에서는 민주정체와 과두정체의 구성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국가의 운영에 필요한 공직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민주정체의 토대를 '자유'라고 언급하면서 자유의 원칙을 '모두가 번갈아가며 지배하고 지배받는다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민주정체의 정의는 가치에 따른 비례적 평등이 아니라 수에 따른 산술적 평등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이것이 정의라면, 필연적으로 다수가 최고 권력을 갖고, 다수가 결의한 것이 최종적인 것이며 정의로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4.
이 외에도 상당히 중요한 언급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이로 미루어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1253ai)
최선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연구하려면 먼저 가장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부터 규정해야 한다. (1323ai4)


이 부분에 대한 강유원의 해설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마지막으로 국가를 윤리적 공동체로 보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선한 생활, 즉 좋은 삶이란 자급자족하는 환경에서 누구나 국가의 구성원임을 당연하여 여기는 그런 생활이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지에서 폴리스는 윤리적 공동체이다. 이 부분은 유념해 둘 필요가 있다. 플라톤에서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고대 정치사상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고대 정치사상은 목적론적 국가론, 국가는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고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토대로 삼는다. 그리고 이 점에서 고대사회의 국가론과 근대사회의 국가론은 정면으로 대치된다. 근대 국가론은 국가가 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목적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가 개개인의 삶의 질이나 도덕적인 행위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고는 더욱이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근대적인 정치학의 입장에서 고대 정치 사상을 보면 굉장히 억압적이다. ... 그럼 점에서 플라톤은 물론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론을 심정에서 받아들이기가 몹시 어려울 것이다. (104쪽)

5.
이 책은 대략 2,000년 전에 씌여졌다. 이런 오래된 책을 원전만 갖고 읽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책이 씌여진 시대의 배경 지식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고, 얇지만 잘 정리되어 있는 해설서를 먼저 읽고 원전을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 같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을 별도로 정리하고 이를 최종적으로 다시 구성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덧글

  • leopord 2009/09/22 05:07 #

    <정치학> 서평과 <니코마코스 윤리학> 서평 모두 잘 읽었습니다. 고대의 당대성에 대해선 한나 아렌트가 잘 짚어내지 않았나 싶군요. <인간의 조건>이 꽤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 여형사 2009/09/22 14:28 #

    서평이 아니고 단순한 요약일 뿐이죠 ^^; 그것도 부분만 포함된..
  • 싱싱차이나 2009/09/24 09:40 # 삭제

    서평 잘 읽었습니다^^ 간단한 요약이라고 하셔도 원체 서양 고전에 약한지라~
    어떻게 책을 이렇게 많이 읽고 기억을 잘해서 쓰세요^^
    요즘 전 책을 읽긴 꾸준히 읽는 거 같은데 읽고 나서 돌아서면 기억이 잘 안나서리^^;;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도 않은데..ㅎㅎ

    여형사님처럼 서평이나 요약을 따로 좀 해야 하나 그런생각이 드네요~잘읽었습니다
  • 여형사 2009/09/24 10:40 #

    읽으면서 챕터별로 혹은 문단별로 요약한 것을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정리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몇번 해보지 않아서 익숙하지 못해요. 자세한 방법은 강유원의 '서구정치사상고전읽기'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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