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헹엘(지음), 박정수(옮김), <유대교와헬레니즘 2,3>,나남, 2012

"페르시아와 초기 헬레니즘시대 동안에 직경이 40km도 채 안 되는 작고 비교적 외딴 유대인 성전국가에서 그러한 창조적 능력이 발전되었다는 것은 놀랍다."(2권, 30쪽)

"'지혜'는 시간과 세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우주의 정신적 질서와 인식원리로서, 이는 세계법 혹은 세계영혼과 비교되는 스토아주의적 로고스와 구별되며, 7의 구조에서 인식될 수 있는 원리이다."(2권,185쪽) 

"이와 같이 묵시 사상의 역사관은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에서 헬레니즘적 정신의 침입에 대항하여 정신적, 종교적 자기 주장을 펼친 유대교적 투쟁의 열매라 하겠다."(2권, 268쪽)

"하시딤의 현자들은 그와는 반대로 '계시를 통한 고등지혜'라는 합리적이고 전혀 허점이 없는 반명제를 통하여 율법에 충실한 열성적 세력들을 규합했다."(2권, 303쪽)

"그리스 전통에서 안다라는 것은 이성이나 로고스로 훈련된 방법론적 능력 안에서-다시 말해서 학문, 그 중에서도 특별히 철학 안에서 실행되는 데 반해서-영지주의자들의 지식은 (그것의 실행은 물론 그 결과로써)..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시는 은사이다."(2권, 361쪽)

"그래서 이방의 영향들은 단지 무의식적이거나, 혹은 논쟁적이고 변증적인 상황에서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2권, 414쪽)

"이에 비햐여 유대교는 윤리적 유일신론이라는 참된 '철학'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이성적인 그리스인들만이 동의할 수 있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유대인들을 '철학자들'로 본 몇몇 그리스 저자들의 초기시대의 견해가 근본적으로 받아들여졌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원칙으로 세워졌다: 유대교는 보편적 철학과 유일신 사상의 조합이다. 이로써 이 저작의 목적, 즉 "유대교와 헬레니즘 간의 종합은 달성된다."(3권, 45쪽)

"전통적인 유대 종교전승을 무력으로 근절시켜야만 예루살렘에서 자기들의 통치권이 확보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3권, 116쪽)

"제신혼합숭배를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 경배는 '헬레니즘화'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3권, 149쪽)

"이런식으로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기원전 175년까지 비교적 연속적으로 발달하여 헬레니즘 기간 동안에 깊이 변형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전반적으로 흔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바, 팔레스타인의 유대교가 그리스어사용 디아스포라 지역의 이른바 '헬레니즘적' 유대교와 근본적으로 분리된다는 견해 역시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헬레니즘 로마시대 동안 팔레스타인 모국의 유대교 역시 서방의 디아스포라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헬레니즘적 유대교'라는 상위 개념에 포함되어야 한다."(3권, 182쪽)

"'토라존재론'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역사 속에서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표현한 기독론이었는데, 이것은 더 이상 민족적이고 역사적인 경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 자체 내에서 일어난 종말론적이고 혁명적인 운동이었다."(3권, 186쪽)

한재균(지음), 중국어 한자 무작적 따라하기, 길벗, 2015(3쇄)

중국어 교재 #3. 2016년 6월 13일~2016년 12월 31일, 

언어는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3)

미야자키 이치사다(지음), 전혜선(옮김),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역사비평사, 2016

               (본문 11쪽)

중국의 과거제도가 얼마나 복잡했는지는  위 도표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과거시험을 예비시험과 본시험 정도로 생각한다면 중국의 과거제도를 크게 오해하는 셈이다. 시험을 볼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도 여러번 치러야 했으며 본 시험도 마찬가지였으니 '나이 50에 합격에도 이르다'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제도가 중국 및 조선 등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기본적으로 국가 관리를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는 발상 자체가 중국에서 기원하며 조선은 이를 과정만 조금 달리한채 그대로 들여왔다. 학문의 성과를 국가에서 평가한다는 생각은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의 획득을 공부의 목적으로 하는 대부분의 현재 한국인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제도가 역사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가? 과거라는 말의 기원을 보면, 중국에서는 관리 등용을 선거選擧라 했는데, 시험에는 여러 종류의 과목이 있었으므로 '과목에 따른 선거'를 줄인 '과거'라는 용어가 당대에 성립했다고 한다. 과거 제도의 시행은 용어의 성립보다 앞서는데, 최초의 과거는 587년 수문제 시절에 구품관인법을 철폐하고 시행되었다. 수문제가 과거를 실시한 이유는 '전대의 세습적인 귀족정치에 타격을 입히고 천자의 독재권력을 확립하는데 있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소수의 독점적인 귀족들이 관직을 독차지하던 이전 시대의 관습에 비해 과거 제도는 시험을 통해 능력있는 인재를 선발했다는 긍정적인 면을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과거 시험이 실시되던 시대의 유럽은 이제 경우 봉건적인 기사제도가 틀을 잡아가던 시기로 과거제도는 '차원을 달리할 만큼 진보한 제도이며, 당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이념을 갖고 있었다'(220쪽)고 할 수 있다. 

반면 실제 채용 인원이 너무 적었고, 과거 자체가 정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실제 시험에 필요한 비용을 감안하면 일부 부유층에게만 한정되었다는 한계도 갖는다. 특히 국가가 비용이 많이 드는 공교육 기관을 통해 관리를 양성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과거 제도에 의존함으로써 실무적으로 별다른 능력을 갖지 못한 지식인들이 관료에 임용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런 결과는 근대에 들어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1872년 학제를 반포하고 학교를 세워 서구의 신교육을 시작하여 동아시아의 패권적 지배권을 확보한 반면, 청은 1904년에야 과거를 폐지하였고 6년 후에 청도 멸망한 것에서 단면적으로 엿볼 수 있다. 물론 청의 쇠락이 과거 제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르틴 헹엘(지음), 박정수(옮김), <유대교와헬레니즘 1>,나남, 2012

저자는 "예수 시대의 팔레스타인이 이미 360여 년간 '헬레니즘'의 지배와 그것이 초래한 문화적 영향하에 있었다는 사실"(41쪽) 에 기반하여 "대략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전체 유대교는 엄격한 의미에서 '헬레니즘적 유대교'로 특징지어저야 한다"(359쪽)고 결론짓는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1부(팔레스타인에서 유대교와 초기 헬레니즘 문명의 만남)에서는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헬레니즘과 유대교의 접촉을 다루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전쟁기술이나 용병체계 그리고 행정제도 등에서 헬레니즘의 영향을 먼저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시실을 통해 헬레니즘 문명은 일차적으로 매우 비종교적인 세력으로 다가왔으며, 유대인들은 희랍인들의 경제활동과 조직화 능력, 논리적으로 기술적으로 체계화 시키는 능력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헬레니즘은 거의 모든 삶의 영역을 포괄하는 서로 뒤엉킨 총체적 세력, 즉 모든 것을 관철하고 각인하며, 공격적이기도 하고 수용적이었던 희랍의 정신적 힘의 표현"(213쪽)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러한 문명에 접근하기 위해 통용 희랍어인 '코이네'가 지중해 지역에 확산되었다는 사실로 끝맺는다. 

2부(헬레니즘의 문화적 위력과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에게 미친 영향)에서는 제목 그대로 교육, 문학, 철학 등의 측면에서 헬레니즘과 유대교의 관계를 다룬다. 구체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 희랍어가 공용어의 지위로 널리 퍼져 유대인들이 희랍식 이름을 갖는 경향이 생겨날 정도였으며, 희랍식 학교제도와 김나시온을 통해 유대인 귀족을 중심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확산되었다고 한다. 이는 기원전 175년 대제사장 아손이 예루살렘에 김나시온을 설립함으로써 정점에 달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헬레니즘적 유대교와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으며, 예수 시대보다 약 3세기 전 부터 헬레니즘적 유대교가 지중해 지역의 팔레스타인과 디아스포라 지역에 유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소영하외(지음), 변형우외(옮김), <신공략 중국어, 초급>, 다락원, 2015(28쇄)

중국어 교재 #2. 2016년 5월 26일~2016년 12월 6일, 

언어는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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