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지음), 이영래(옮김), <모두 거짓말을 한다>, 더퀘스트, 2020(12쇄)

2018년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벌써 12쇄를 찍었을 만큼 많이 팔렸다. 내용도 아주 흥미롭다. 

인터넷의 등장이후 대규모의 데이터 집적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데이터마이닝 등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어 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0년전에 이미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이라는 과목에서 신용카드회사 등의 사례가 교과서에서 다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빅데이터에 대한 논의가 풍성해진데는 데이터 수집에 대한 비용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매일 엄청난 규모의 이용자 데이터가 생성되며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저자가 밝힌대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예상치 못한 새롭고 유용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디지털 자백약'이라는 표현대로 성적인 취향 등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사람들의 속마음도 구글 검색에서는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대규모 데이터이므로 원하는 집단으로 '클로즈업'하여 현미경으로 보듯 더 상세한 분석도 가능하다. 이 책에는 이런 사례가 자세히 그리고 흥미롭게 기술된다. 

이 책에서도 소개되듯 빅데이터에 대해서는 <<빅데이터 인문학:진격의 서막>>에서 구글 엔그램뷰어를 활용한 다양한 분석 사례를 접할 수 있다. 선생님께서는 빅데이터, 공부방법, 뇌과학이라는 세가지 분야는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학문이라서 늘 업데이트를 하신다고 하였는데,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되는 빅데이트는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듯 하다.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지음), 양세규&윤혜림(옮김), <그리스도교, 역사와 만나다>, 비아, 2020

책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1965년 생으로 동방정교회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문화비평가라고 한다. 2011년 출간된 <<무신론자들의 망상>>으로 마이클 램지상을 수상하고 2017년에는 신약성서를 새로 번역하여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신학자라고 한다. 

이러한 저자의 이력은 책 구성의 참신함에 잘 드러나고 있다. 전체가 50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책은 50개의 주제로 그리스도교의 역사 전체를 일괄하고 있다. 교회사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 같으나 실제 내용을 보면 정치사, 사상사 혹은 철학사라 할 정도로 그리스도교가 전체 사회에 미친 영향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17세기의 '종교전쟁'은 사실상 종교를 둘러싼 전쟁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나 갈릴레이에 대한 심문으로 로마교회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주장들이 그런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로마 가톨릭과 루터 중심의 프로테스탄트에 관한 서술보다 그 외 지역, 즉 흔히 말하는 동방의 교회 및 그 외 지역의 그리스도교 전파와 활동에 대한 서술이 비중있게 다뤄진다는 특징도 보여준다. 저자가 동방정교회 신학자인 영향이 있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로만 가톨릭과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운동만을 그리스도교의 범위로 생각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보인다. 

탁월한 그리스도교 서적들을 번역 출간하고 있는 비아출판사의 여섯번째 '만나다' 시리즈로 야로슬로프 펠리칸의 <<예수, 역사와 만나다>, <<성서, 역사와 만나다>>, 리처드 버릿지의 <<복음서와 만나다>> 등과 함께 그리스도교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게리 윌스(지음), 권혁(옮김), <링컨의 연설>, 돋을새김, 2012(개정판 1쇄)

'고급철학연습'에서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연설을 여러번에 걸쳐 배우고 있는데, 근현대 전몰자추모연설 (epitaphios logos)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배우기 위해 참고한 책. 1장까지만 읽으면서 수업에서 배운 내용과 비교했고,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읽기로 한다. 

저자 게리 윌스는 탁월한 학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 책 말고도 기독교에 대한 3부작인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복음은 그렇게 전해지지 않았다>>의 저자로도 알려져있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예전에 한번 읽긴 했는데, 읽었다는 기억만 있고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니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야겠다. 

프란츠 카프카(지음), 권혁준(옮김), <성>, 창비, 2019(5쇄)

이 책의 주제는 낯선 것(das Fremde)이라고 한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이었던 저자의 종교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상황과 이에 대한 저자의 반응 등이 텍스트 해석에 참고가 될 수 있고, 실제로 역자 해설에 따르면 이 책에 대한 수 많은 해석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이 신의 은총이라 주장하는 전통적인 해석에 대해 정반대의 해석도 어느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하니, 이 책의 주제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보통의 독자가 명확히 파악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몽환적이고 어둠침침한 분위기에 부분적으로는 이해되는 듯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슨 말인지 아해하기 어려운 대화들로 가득한 이 소설은 그래서 그 주제가 특정한 무엇이 아니라 '낯선 것'이라 하신 선생님 말씀이 제일 맞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끝까지 읽어본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기회가 있다면 다시 읽어볼 수도 있겠다. 

마르틴 헹엘(지음), 이영욱(옮김), <십자가 처형>, 2020(2쇄)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저자 마르틴 헹엘이 충실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밝히는 십자가 처형의 실체적인 사실에 대한 책. 십자가 처형은 노예들이나 반란자들, 야만인들과 강도들에 대한 최고 형벌로서의 처형이었고, 이런 사실을 직시할 때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어떤 의미였는지 더욱 또렷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부인할 수 없는 다음의 결론으로 인도한다. 바울이 자신의 선교사역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파할 때 예루살렘과 일루리온 사이에 있었던 동방의 그리스어권 청중들은 이 "그리스도"-바울에게 있어서 이 칭호는 이미 고유명사다-특별히 잔인하고도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십자가의 죽음은 통상 중범죄자들이나 로마에 반역한 노예들이 겪는 것이었다. 이러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유대인,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땅 위에 보내진 신적 존재이자 하나님의 아들, 만물의 주, 도래할 세상의 심판자라는 선언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틀림없이 "미치고도" 참람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168쪽)

폴 카트리지(지음), 이은숙(옮김), <스파르타 이야기>, 어크로스, 2014(3쇄)

캐임브리지 출판사에서 간행된 The Cambridge History of Greek and Roman Political Thought의 1장이 Greek political thought:the historical context인데 이 장의 저자가 폴 카트리지이다. 저자 소개를 보면 1979년부터 케임브리지 고전학부의 그리스 역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고 하며, 위키 백과를 참조하니 2014년에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가 리쿠르고스의 개혁부터 페르시아전쟁-펠로폰네소스전쟁을 거쳐 로마에 의한 정복까지이므로 스파르타의 흥망성쇠를 모두 포괄한다고 할 수 있으며, 전형적인 역사 서술이라기 보다는 에피소드나 인물 중심의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다룬 책을 읽으면서 스파르타에 관해 좀더 알고 싶을 때 참고하여 읽어보면 좋은 책으로 보인다. 

정병호(지음), <고난과 웃음의 나라>, 창비, 2020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중국과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양국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학창시절 교과서에 머물러 있다거나 현재 이들 나라들의 정치 체제나 사회 제도에 대해서 매우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아니면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보다 더, 아니 아예 깜깜하게 모르는 나라는 북한, 그러니까 조선인민공화국일 것이다. 대체 북한 사람들은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데 왜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아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정권을 물려줄 수 있는 것일까. 

북한에 대한 의미있는 지식을 얻기 어려운 이유는 정확한 정보 자체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라종일 교수의 <<장성택의 길>>이 북한 정치체제의 작동방식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한 통찰을 보여주긴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워낙 폐쇄적인 국가라서 사실 자체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정병호 교수의 <<고난과 웃음의 나라>>는 중국과 일본보다 훨씬 가깝지만 유럽의 여느 나라에 비해서도 아예 모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북한에 대해 의미있는 정보를 준다. 

저자는 문화인류학자이자 북한에 대한 민간 차원의 지원을 위해 북한을 여러번 방문한 학자로 스스로의 관찰과 학문적인 방법론을 결합하여 '극장국가'로서의 북한의 모습을 잘 정리하고 있다. 특히 2장부터 4장에서 북한 체제의 현실을 상세히 전달해준다. 북한은 이미 '한민족'이 아니라 스스로를 '태양민족'이라 부르고 있다는 점도 4장에서 알 수 있다. 이후 90년대 대기근이 어떻게 체제를 악화시켰는지 그리고 출신성분이 세습되는 모습되어 중세 봉건시대처럼 신분제가 철저히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 5장과 6장에서 정리되며, 7장은 그럼에도 일말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저자의 희망적인 기대를 보여준다. 

북한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 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난과 웃음의 나라>>는 매우 의미있는 책이라고 할 것이다. 

도널드 케이건(지음), 박재욱(옮김), <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 휴머니스트, 2013

원제는 Thuchydides-The Reinvention of history로 '투퀴디데스, 역사를 재발명하다' 정도의 제목이 될 것이다. 역사의 아버지가 헤로도토스라면 케이건은 투퀴디데스가 '정치사의 아버지'(343쪽)라 생각하는데, 헤로도토스가 역사라는 학문을 발명했다면 투퀴디데스는 이를 정치사라는 측면에서 '재발명'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따라서 '역사를 다시 쓰다'는 정확한 번역이라 하기 어렵다. 

투퀴디데스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mythos)로서의 역사를 배격하고 엄격한 사실주의 역사를 창조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술한다는 그의 저술 원칙은 랑케의 'Wie es eigentlich gewesen'으로 이어져 이 책에도 언급되었듯 20세기에 이르도록 객관성을 가장 중요한 역사기술의 원칙으로 생각한 모든 역사가들의 표본이라 지칭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케이건은 이러한 통상적인 평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투퀴디데스가 '강력한 수사적인 기술'(338쪽)을 발휘하여 당대에 통용되던 전쟁의 원인과 결과 및 이와 결부된 여러 평가들을 수정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투퀴디데스가 뒤집으려 시도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페리클레스에게 패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쟁 패배의 실제적인 책임은 아테나이 민주정의 오만과 탐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들을 위해 투퀴디데스는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하거나 심지어 왜곡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아테나이인들이 시켈리아의 자세한 사정을 모른다는 주장이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퀴디데스의 서술 방식이 현대의 증거주의에 입각한 객관적 서술방식과 다르다고 하여 이를 '거짓'이라고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들다. 우선 사실 관계의 습득 자체가 당대 사람들의 구전에 의존했었기 때문에 문서 증거를 풍부하게 습득할 수 있는 근현대와 사정이 전혀 달랐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그가 '그때 그때 상황이 요구했음직한 발언'을 자신의 연설 인용 방식으로 스스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사건(ergon)을 있는 그대로 다룬다는 주장하면서도 사건의 원인을 '숨겨진 진짜 원인(alethestate prophasis)'과 '알려진 이유(aitia)'로 나누는 태도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즉 투퀴디데스는 '숨겨진 진짜 원인'이 당대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이를 밝혀 다른 이들이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저술의 목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설득은 사실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강력한 수사적인 기술'을 동원해야 한다. 그가 동원한 수사적인 기술은 당대 수사학자들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했던 '생동감(vividness)'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때 그때 상황이 요구했음직한 발언'으로 당대의 연설을 인용한 이유도 설득을 위한 생동감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설득은 '날것 그대로의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생동감에 근거하며, 이성은 단지 이를 정당화 하는 것이라는 현대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건이 직접 밝히고 있듯이, '투퀴디데스의 관점보다 동시대인들의 견해가 진실에 더 가깝다'고 하여 그의 업적이 훼손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투퀴디데스는 아테나이의 오만(hubris)이 복수(nemesis)를 가져왔다는 시인의 플롯을 활용하여 수사학자의 태도로 펠로폰네소스인과 아테나이인의 전쟁에 대해 썼다. 그는 권력을 이루는 요소들이 무엇이고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명확하게 관찰하고 이를 생동감있게 서술하여 정치사로서의 역사를 재발명했다. 그가 당대인들을 설득하는 것에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이후 2천년간 거의 모든 이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분명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권 23장 수업

나는 헬라스인들이 평화 조약을 파기한 이러저러한 이유들과 분쟁의 근거들을 먼저 제시하여, 왜 헬라스인들이 그렇게 큰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느 누구라도 조사할 필요가 없도록 하고자 한다. 참된 원인은, 비록 거의 제시되어 오지 않았지만, 아테나이인들의 큰 성장이 가져온 라케다이몬인들의 두려움이 그들을 전쟁에 나설 수 밖에 없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측이 공식적으로 제기한 휴전협정 파기와 전쟁에 휘말리게 만든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1.23.5~6)

존 B 게이블 외(지음), 신우철(옮김), <문학으로서의 성서>, 이레서원, 2011

1. '사람의 작품'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문학으로서 성서를 보는 관점 
- 성서내의 모든 저작은 대상이 아닌 주제의 표현임에 유의
- 성서는 약 1천년의 기간 동안에 생산된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저작물의 선집 anthology
- '자신의 의도에 따라 본문을 고치거나 바꾼' 저자와 편집자가 있었음

2. 성서내의 문학 양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비유 parable

3. 고대 근동의 문서들과 성서에는 평행 본문이 존재. 표절이나 모방이 아니라 '전통의 공유'라는 측면으로 이해 

4. 성서가 다루는 역사는 약 2천년으로 범위에 비하면 역사책으로서의 분량은 적은편
  " 성서로부터 '실제 무엇이 일어났나?'를 발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 저자들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다."
    (117쪽)

5. 성서의 무대인 팔레스타인은 길이 160킬로~폭 30킬로 내외

6. 선택된 정경은 역사적인 형성물

7. 오경, 예언서, 지혜문학, 묵시문학. 복음서, 서신, 계시록 등으로 구성 
- 성서에 대한 예표론적 해석에 주의할 것 
  "아모스, 혹은 미가, 혹은 이사야나 에스겔 같은 예언잗르이 먼지 날리는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의 거리에 서서, 자신들을 둘러싼 호기심 어린 백성들에게 연설하면서 핵전쟁 시대의 미국이나 유럽 혹은 아시아에 대해 이야기 했을까?" (204쪽)

8. 신약성서의 헬레니즘적 배경에는 수사학, 스토아철학, 신비종교가 있음

9. 외경 apocrypha 위경 pseudepigrapha

10. 4복음서의 저자가 누구였는지 알지 못함

11. 사도행전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닌 교훈적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 정교하게 기획되고 구성된 내러티브임 

12. 바울이 작성한 것이 확실힌 진정서신은 7권(이 책의 주장)

13. 바울에 대한 3가지 키워드
-  종말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기독론(예수의 이야기가 모든 시대와 장소에 걸쳐 인류를 향한 의미를 조직적이고 합리적이며 총체적으로 이론화한것), 이신칭의 Justification by faith

14. 남겨진 신약사본은 5천종 이상이며 이중 완전한 사본은 약 60개, 가장 초기 작품은 4세기 
 "놀랍게도 이 사본들 가운데 어떤 두 작품도 내용이 동일하지 않다."(405쪽)

15. 성서는 번역된 책 
 "자신말의 번역이 '진정한' 성서라는 주장은... 신이 거의 400년 전에 작업한 번역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이전이나 이후의 번역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425쪽)



잡담 잡담

1970년대 : 유아기, 태어난 것이 가장 큰일 
1980년대 : 소년기, 중2 때 공부에 매진한 것이 가장 큰일 
1990년대 : 청년기, 대학에 가고 대학원에 가기로 결정한 것이 가장 큰일 
2000년대 : 성년기,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선생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일
2010년대 : 중년기, 스포츠를 일로 하고 선생님께 공부를 직접 배우게 된 것이 가장 큰일
2020년대 : 장년기, 선생님께 공부를 계속 배우며 돈벌이에서 잘 은퇴하는 것이 가장 큰일
2030년대 : 초로기, 
2040년대 : 노년기, 

이현화(지음), <작은 출판사 차리는 법>, 유유, 2020

무언가 결단하고 행동에 옮겨야 어떤 일이든 벌이지는 법이다. 저자가 그렇다. 책방을 하겠다고 땅을 보러 다닌지 십년 가까이 끝에 어이없게도 책방은 절대 할 수 없는 서울 시내의 작은 한옥에 '꽂혔'고, 그 집을 사고 수리하고 살 생각을 하니 다니던 출판사에낮에 출근하기가 싫어져서 1인 출판사를 차리게 되었단다. 그렇게 설립되어 2년간 유지되고 있는 '혜화 1117'이라는 집 주소에서 회사 이름을 빌려온 작은 출판사는 손익 분기점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일곱권의 책을 냈다. 앞으로 어찌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저자가 자신의 이 선택에 후회할 가능성은, 설령 출판사가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리 크지는 않을 듯 하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책방을 운영하면서 월세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그때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이었다. 책을 팔아서 한 달에 150만 원을 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물가는 계속 올라 처음에 150만 원으로 시작한 최저 수입액의 마지노선은 200만 원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그렇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책방 공간을 따로 마련한다는 건 집과 일터가 분리된다는 뜻이고, 그건 곧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거야말로 '노땡큐'였다. 나는 쉰 살이 넘어서까지 출근 시간마다 허둥거리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23쪽)



이지은(지음), <편집자의 마음>, 더라인북스, 2020

내가 살아서 공부하다 죽을 때까지 책보다 더 지식을 얻는데 효과적인 매체가 나올 수 있을까? 인류는 아직 E북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물론 나도 동의한다. 아직까지 종이를 매체로한 책이 지식 습득에 가장 효율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는 책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둘 것이며, 저자나 번역자 그리고 편집자 등 책을 생산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책도 그런 관심에서 읽어본 책이다. 

저자가 아주 훌륭하다면 편집자가 필요없을 수도 있다. 선생님 책에는 따로 편집자가 표기되지 않는다. 본인이 편집자 역할도 하시기 때문일텐데, 그렇다고 모든 저자들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책의 저자인 이지은 편집자가 정의한 편집자의 역할은 '공감하고 관계 맺고 연결하는'일이라고 한다. 저자와 독자와의 중간에서 둘 모두를 공감하고 관계 맺고 연결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인터넷 서비스의 기획자들도 사실 비슷한 일을 한다. '마케팅'도 개념적으로는 제품과 구매자를 연결하는 일을 지칭한다. 그러고보면 네이버의 공식적인 회사 비전도 'connect'이다. 서비스보다 플랫폼이 대세인 시대에서 플랫폼 자체가 모두 연결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떤 이가 훌륭한 편집자인지 궁리한다면 플랫폼의 역할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로완 윌리엄스(지음), 손승우(옮김), <바울을 읽다>, 비아, 2020

저자가 제시하는 바울 서신 읽기의 핵심은 바울이 당대 지중해 문명에 '위험천만한 새로움'을 전했다는 점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바울이 속했던 사회의 '사회적,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바울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고 예수와 관련한 사건들이 자신들이 속한 세계의 틀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믿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하면서 그의 서신들을 읽을 때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한다. 

1장 '내부인과 외부인'에서는 바울이 살던 시대가 제국에 소속되는 방식인 시민, 이주자, 노예에 따라 천차만별인 시대였으며 '보편적 인권 개념'이 전무했으므로 당시 여러 계층이 섞여였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당시 로마 제국 대다수의 인민들에게는 매우 낯선 풍경이었음이 제시된다. 특히 당대는 특정 종교가 '하나의 종교'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로 "구별된 활동, 일상 활동과는 구별되는 특수한 활동으로서의 '종교성을 갖는' 일을 하게 되는, 특별하게 구별된 사회 영역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 였으므로 바울이 전한 것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 질서 new world order', 즉 하느님과 서로에게 속하는 새로운 관계 방식있다고 한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노예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 3:28)

2장 '보편적 환대:바울의 불온한 사상'에서는 보편적 환대, 완전히 새로운 자유, 완전히 새로운 공동체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바울의 사상이 왜 당대에 불온했는지에 대해 논증한다. 보편적 환대 universal welcome는 앞서 인용된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통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바울의 사상이려니와 이는 당대의 첨예한 신분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주장이었으며 "그러므로 예수와 바울이 엄청나게 다르다고 보는 것은 속단"이며, "어떻게 보아도 '자격 없는' 이들에게 문을 열어 하느님 백성에 속하게 한 예수의 정신이, 보편적 환대라는 바울의 불온한 사상 속에 깔려 있다"고 한다.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계획하신 공동체로 자격없는 그리스도인들을 받아들였으니 그들도 다른 이들을 환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유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바울에게 자유란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환대하시기 전에 먼저 하느님을 만족시켜드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울이 주장하는 자유의 핵심이라고 한다. 즉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는 (하느님의 인정을 끌어내는 우리의 선한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신뢰를 끌어내는 그분의 활동을 통해 교정된다는, 즉 바로잡힌다(justified(흔히 번역되는 말로 표현하면 의롭게 된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울 저작의 핵심이라고 하는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됨'의 의미라고 한다. 자유로워진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누구나 시민'들의 모임(에클레시아)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유기체와 같은 공동체가 되며 이는 "사회 세계뿐 아니라 물리적 세계까지를 새로이 평가하고 새로이 생각함으로써 우리가 저 모두를 아우르는 새로운 준거틀frame of reference로 나아가게" 한다고 한다. 

3장 '새로운 창조:바울의 그리스도교적 세계는 '하느님의 형상 the image of God'을 중심으로 그가 생각한 새로운 세계의 모습이 제시된다. 예수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인해 "그는 우리에게 하느님 아닌 것을 창조 그 자체로 끌어들이시는 하느님, '환대'를 통해 자신과 화해시키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드러내"며 "그 하느님을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믿고", "그 하느님을 믿음으로 인해 만물은 일치를 이룬다"고 한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인해 "선한 행동은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 각 사람을 자유롭게 해 그만이 공동체의 삶에 베풀 수 있는 것을 베풀게 하는 것"이 된다고 한다. 


마크 마조워(지음), 이순호(옮김), <발칸의 역사>, 을유문화사, 2014(신판 3쇄)

"1922년 그(아놀드 토인비)는 이렇게 썼다. "(민족주의 원칙에 대한) 서구의 방법을 도입한 것이 결국 이 민족들에 학살을 초래한 것이다. ... 이 같은 학살은 단지, 서구의 그러한 치명적 사상에 선동되어 서로 간에 없어서는 안 될 이웃들 간에 벌인 극단적 형태의 민족적 투쟁이었을 뿐이다." (230쪽)

----------

"20세기의 발칸은 '발칸'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모든 부정적 의미를 온전히 현실화한 역사를 썼으나, 21세기의 발칸에서는 민족성이나 종교에 따른 식별이 사물의 이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 곳의 정치는 이제 더이상 영토 확장과 민족의 영광에 이끌리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이제는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투쟁도 벌이지 않는다. 오늘날 "발칸의 가장 큰 위협은 국제 경제로부터" 온다. 

...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게 있다. 한국인들은 민족, 종교, 국가 등을 자연스러운 식별 표지로 간주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체제를 이루고 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들은 이질적인 것이 뒤섞일 틈이 없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있었다 해도 그것을 기어이 구별해 내고야 마는 의지를 가졌던 만큼 낯선 것들을 쉽게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고 여기는 요소들을 상대가 단 하나라도 공유하고 있지 않으면 편안해 하지 않는다. 발칸의 역사는 그러한 정체성 식별의 노력이 20세기를 거치면서 결국 무엇에 이르렀는지를 보여 준다." (강유원, <책 읽기의 끝과 시작>, '발칸화에 대하여)

강유원(지음), <책 읽기의 끝과 시작>, 라티오, 2020

[책을 구성하는 차례 분석하기]

이 책 제 1부는 '어떻게 읽을까'로 책에 접근하는 방식들을 제시하며 제 2부는 '어떻게 쓸까'로 서평의 여러 형식들을 정리하고 있으며 제 3부는 '시대를 읽는 주제 서평들'로 근대와 정치,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일련의 주제서평이 나열되어 있어 일차적으로는 책 읽기의 결과물인 서평을 작성하기 위한 과정을 읽기-쓰기-사례라는 순서로 보여주는 듯 하다. 

자세히 보면 제 1부와 제 2부에 제시된 읽기와 쓰기의 방법론과 제 3부의 주제서평은 그저 예시가 아니라 저자가 이러한 책들을 실제로 읽고 정리한 후 제 3부의 주제인 '근대의 정치적 인간'이라는 종합적인 주제로 정리한 결과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즉 방법론의 제시와 잘 쓴 서평들을 그저 나열한 것이 아니라 책에서 제시된 방법을 저자가 직접 적용하여 어떻게 '책 읽기'가 '근대의 정치적 인간'이라는 정리된 '지식'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를 1~3부를 전체를 통해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부록인 <<장미의 이름>> 서평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드소가 불타 버린 장서관의 책 조각을 줍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진리의 한 부분에 불과한 <<장미의 이름>>을 읽는 것"도 "어떤 시대의 특수한 조각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보편적 진리에 이르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준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를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이라는 서평집의 결론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하면 '진리의 한 부분에 불과한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을 읽는 것'도 '근대라는 시대의 특수한 조각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보편적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암시'에 대한 실천적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저자가 직접 말하지 않고 <장미의 이름>에 대한 서평을 통해서 중층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형식적인 면에서 이 책은 제 1부 8편, 제 2부 5편, 제 3부 23편에 부록까지 모두 3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분명 단테 <<신곡>>의 지옥편을 연상시키는데, 만일 지옥편에 해당하는 것이 근대의 정치적 인간을 주제로한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이라면 향후 연옥편과 천국편에 해당하는 또 다른 서평집의 출간도 기대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희망에 기반한 예상을 해볼 수도 있겠다. 

부가적으로 저자가 기존에 출간한 고전강의 시리즈 4권이 '무엇을' 공부할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책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고전강의 시리즈와 디자인은 다르지만 책의 크기는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으므로 향후 '공부의 끝과 시작'을 위한 일련의 시리즈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클라크(지음), 이재만(옮김), <몽유병자들,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 책과함께, 2019(2쇄)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추적함에있어 '왜' 일어났지가 아닌 '어떻게'일어났는가에 주목한 책. '피셔테제'와 같이 전쟁의 책임이 어떤 특정 국가나 진영에 있음을 논증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대재앙에 이르게되었는지를 밝힌다. 1차 세계대전은 특정 국가의 범죄가 아니라 공동의 비극이었음을 논증한다. 

"1914년 전쟁 발발은 온실 안에서 연기 나는 권총을 손에 쥔 채로 시체를 지켜보는 범인을 발견하며 끝나는 애거서 크리스티 류의 드라마가 아니다. 이 이야기에는 연기 나는 총이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주요 인물들 모두가 연기 나는 총을 쥐고 있다. 이렇게 보면 1차 세계대전 발발은 범죄가 아닌 비극이었다."(856쪽)

"이런 의미에서 1914년의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859쪽)

베르너 예거(지음), 김남우(옮김), <파이데이아, 희랍적 인간의 조형>, 아카넷, 2019(2쇄)

- 저술의도
"희랍적 인간의 역사적 교육과정과 희랍인들이 품었던 이념적 인간상의 정신적 구축을 변화 발전에 따라 기술하려는 시도"(7쪽)
"희랍의 인간교육(paideia)을 희랍 고유의 특질과 역사 전개 가운데 설명하는 것"(19쪽)

- 교육의 목표와 주요 지점들
"그것은 바로 훌륭한 인간의 조형이었다."(19쪽)

"희랍 교육이념의 귀족성은 탁월함의 개념에서 기원한다."(51쪽)

"선의 철학적 이데아라는 보편타당한 본보기가 옛 귀족적 탁월함의 도덕이 보여준 본보기 사유에서 비롯된 정신사적 연장선에 위치한다."(82쪽)

"호메로스를 통해, 유일무이한 범희랍적 공동자산을 통해 희랍은 통일된 민족의식에 이르렀다. 호메로스는 후대의 모든 교육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112쪽)

"인간 자의식의 발전과정에서 오르페우스의 영혼 개념은 중요 단계였다. 정신의 신성함에 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견해, 단순 감각적 인간과 본래적 자아의 구별,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인간 사명이라는 생각 등은 오르페우스의 영혼 개념이 없었다면 생각될 수 없었을 것이다."(273쪽)

"예술과 종교와 철학이 불가분 하나로 통일된 인류문명의 가장 고귀한 표현이 비극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고찰만이 비극을 보는 정당한 방법이기 때문이다."(372쪽)

"투쟁 속에 고통받는 영웅이라는 상징을 만들어냄으로써 모든 인간 창조물 가운데 가장 탁월하게 인간 고유의 비극성을 표현한 것은 희랍문명의 공로다. 이 상징과 무관하게, 세상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한 '이 사람(ecce homo)'은 다른 정신에서 유래하는 새로운 상징이며, 이 또한 인류의 상징으로 영원한 유효성을 가질 것이다."(395쪽)

"소포클레스의 인물들은 미적 감각에서 탄생했는데, 그 출발점은 이제까지 전례가 없던 '영혼 부여'였다. 이로써 탁월함의 새로운 이상이 출현했고 이때 처음으로 '영혼'을 의식적으로 모든 인간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았다."(415쪽)

"하지만 지식교사 교육이 호메로스 이래로 무엇보다 문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옛 교육전통을 새로운 합리주의 시대의 언어형식과 사유형태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교육개념을 이론적으로 의식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운동은 이오니아 과학영역을 윤리적, 사회적으로 확장한 것이며, 자연탐구과학을 다루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그들은 실질적 정치윤리 철학의 개척자라 하겠다."(440쪽)

"페리클레스 시대에 새로운 높이와 폭을 가지게 된 희랍 교육사상은 최고의 역사적 삶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희랍 교육사상은, 민족과 국가가 정신적으로 조형된 삶 속에서 외부로 뻗어 나가며 그 힘으로 타 민족과 타 국가를 빨아들이는 가장 숭고한 힘의 총체가 되었다. 인간교육의 이념 말고 희랍세계에서 아테네가 보여준 정치적 권력의지를 정당화해줄 근거는 달리 없을 것인데, 특히 아테네의 외적 좌절 이후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인간교육의 이념에서 아티카 정신은 영원한 존속이라는 위안을 얻었다."(588쪽)

J.D.밴스(지음), 김보람(옮김), <힐빌리의 노래>, 흐름출판, 2019(13쇄)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능력은 당연히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내게 백인 노동 계층의 어떤 점을 가장 변화시키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대답하는 까닭이다. 해병대는 외과 의사가 종양을 도려내듯 내게서 그런 마음을 도려냈다."(280쪽)

"이 책은 그이들과 비슷한 미국 중부의 '힐빌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통과해온 그 어르신들과 미국 중부의 '힐빌리'들 사이에는 태평양만큼이나 넓은 문화적, 역사적 차이가 있다. 하지만 분명히 동일한 테마 하나가 근저에 흐르고 있다. 
 문화와 교육에서 소외되고 가족 및 공동체 관계가 형해화된 환경에서 살아오던 이들이 탈산업화로 인해 일자리마저 빼앗기게 되면서 어떤 절망과 분노가 쌓이게 되는가. 그리고 그러한 쌓임이 어떻게 해서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열망으로 분출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다시 그들의 삶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되는가.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삶과 문화, 생각의 세계를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트럼프와 박근혜 같은 비극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홍기빈의 추천사)

모나 D. 후커(지음), 양지우(옮김), <복음의 시작>, 비아, 2020

복음서 네편의 도입 부분만을 분석하여 정리하고 비교한 책. 

복음서의 도입부는 '오늘날 책의 제목과 책 표지, 안내문, 목차와 서문'에 담긴 정보를 고대에는 글의 첫 단락에 담아야 했기에, 이 부분의 분석을 통해 개별 복음서 각각의 전체 내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각 복음서 도입부분과 핵심적인 내용은 목차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극적인 열쇠 - 마르코 복음서 1:1~13
예언의 열쇠 - 마태오 복음서 1~2장
영적인 열쇠 - 루가 복음서 1~2장
영광의 열쇠 - 요한 복음서 1:1~18 

"어쩌면 복음서 저자들의 기획이 너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그들이 도입부에서 제공한 자료들로 나머지 이야기를 조명하면서도, 이내 그들이 우리에게 준 것이 뒤따르는 내용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정보'였음을 까맣게 잊곤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야기 속 인물들이 우리에게는 명확하게 보이는 바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비난하곤 했습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저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지요."(160쪽)


마이클 스콧(지음), 홍지영(옮김), <기원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 사계절, 2018

- 문제제기
"우리는 글로벌 공동체에 살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쓰고 읽을 때는 과거가 연결되지 않은 개별적인 뭉치인양 취급한다. 이제 더 큰 그림을 보면서 하나의 '고대 세계'가 아니라 연결된 고대 세계'들'을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 (13쪽)

- 주안점
"이 책에서 나는 세계 의식이 출현한 시대이자 여러 면에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과 흡사한 고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은 물자의 이동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 초까지 일어난 정치, 제국, 종교의 발전에 주목한다"(14쪽)

- 세 시기
1) 기원전 508년, 아테네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대, 정치를 통해 협의가 이루어진 사회
2) 기원전 218년, 한니발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를 침공한 시대, 전쟁을 통해 구축된 고대 공동체
3) 기원후 312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비우스 다리 전투 승리, 종교 신앙의 도입, 적응, 혁신을 통해 형성된 인간과 신(들)의 관계 발전

- 1부, 축의 시대의 정치 
  1장, 아테네 민주주의:민중의 힘을 향한 갈망
  2장, 로마 공화국 정부의 완성
  3장, 공자와 성군
- 2부, 전쟁과 변화하는 세계
  4장, 새로운 세대의 부상
  5장, 관계의 성립
  6장, 동방과 서방의 제국
- 3부, 연결된 세계의 종교
  7장, 내부와 외부로부터의 종교 혁신
  8장, 종교의 강요, 공존, 결합
  9장, 종교와 통치 

- 4세기, 역사의 결정적 순간 
"이제 고대 세계 전역에 걸쳐 종교, 전쟁, 정치가 하나로 융합되었다. 로마 세계에서는 황제가 신의 뜻을 수행하는 자로서 스스로 규정한 공식 종교를 강제하기 위해 투쟁을 벌였으며, 이후 교회와 충돌하면서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위의 갈증이 영구화된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왕과 가톨리코스가 때로는 서로 다른 종교적 입장을 취하면서, 때로는 (로마에서처럼)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위가 충돌하면서 대립했다. 굽타왕조 치하의 인도에서는 종교와 통치의 결합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안정으로 이어져, 종교적 다양성과 지적 창조성이 만개한 인도 역사의 황금기를 낳았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불교가 비판 세력을 물리치고 황실에 공인되었으며, 통치자들은 승려의 종교적 독립성을 존중하고 때로는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4세기는 역사의 결정적 순간이라 불릴만하다. 이 시기에 고대 세계 전역에서 종교적, 정치적 구성이 역동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변화가 오늘날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과 우리가 믿고 있는 여러 사상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390쪽)


에릭 클라인(지음), 류형식(옮김), <고대 지중해 세계사>, 소와당, 2017

- 고대 지중해 청동기 시대의 의미
"에게 해, 이집트, 근동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기원전 1200년 직후까지 지속되었다. 수백 년 동안 문화와 기술의 진보 끝에 마침내 종말이 찾아오자, 지중해 지역 대부분의 문명 사회 및 국제 관계는 극적으로 멈추어 섰다. 서쪽으로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이집트, 가나안,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이었다. 종말과 함께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한때 학자들은 그 과도기를 세계 최초의 암흑기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리스와 그 영향권 안에서 새로운 문화가 재탄생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다. 그 때 재탄생한 무대 위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문화가 발전해 왔다."(서문, 12쪽)

- 이 시대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우리가 확인한 것은 기원전 1207년과 기원전 1177년 해양민족의 침입을 넘어서는, 기원전 1225년에서 기원전 1175년까지 그리스와 지중해 동부 지역을 휩쓸었던 지진을 넘어서는, 같은 시기 해당 지역을 휩쓸었던 가뭄과 기후 변화를 넘어서는 "퍼펙트 스톰"의 결과였다. 이로써 번성했던 청동기 시대 문화와 민족들, 미케네와 미노아로부터 히타이트, 앗시리아, 카시트, 키프로스, 미타니, 가나안, 심지어 이집트도 마찬가지였다."(5막, 퍼펙트 스톰, 278쪽)

** 오래된 교과서의 오류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북쪽으로부터의 침략은 없었고, "도리아인의 침략"으로 미케네 문명이 무너졌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259쪽)


야로슬라프 펠리칸(지음), 민경찬&손승우(옮김), <예수, 역사와 만나다>, 비아, 2019

"예수가 인류의 일반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9쪽)

예수가 인류 문화에 끼친 영향은 목차에 역사적인 순서와 대략 비슷하게 제시된다. 

1. 랍비
2. 역사의 전환점
3. 이방 사람들을 비추는 빛
4. 만왕의 왕
5. 온 우주의 그리스도
6. 사람의 아들
7. 참된 형상
8.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9. 세상을 다스리는 수도사
10. 영혼의 신랑
11. 참 하느님과 참 인간의 표상
12. 완전한 인간
13. 영원하신 분을 비추는 거울
14. 평화의 왕
15. 상식의 교사
16. 영혼의 시인
17. 해방자
18. 온 세계에 속한 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교양의 차원에서 기독교 이해를 위해 매우 긴요한 책이다. 몇가지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옮겨둔다. 

"인간의 비참함이나 장엄함 중 한면만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저 양극단을 하나의 관점으로 모으는 것, 저 비참함과 장험함에서 야기되는 모든 결과를 철학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일관되게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파스칼은, 그리고 그에 앞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저 양극단을 하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186쪽)

"아벨라르가 비판했던 십자가에 관한 경건해 보이는 말들이 암시하듯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하느님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그분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고 우리 때문에 아들조차 아끼지 않으신 그분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깨닫게"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260쪽)




공부시간기록 잡담

2018년 : 1,163시간, 3.2/d
2019년 : 619시간, 1.7/d

강유원(지음), <철학고전강의>, 라티오, 2016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교양을 쌓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긴 도정"과 "풍부하고도 심오한 운동"이 요구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적당한 "상식"이 철학적 사색으로 간주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섣부른 "천재성"이 횡행하는 시대에는 그것마저도 철학적 사색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개념"이 무엇인지, "착란적 언사"가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조차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적어도 "생선도 고기도 아닌, 시도 철학도 아닌 조형물"정도는 식별할 줄 아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40강, 헤겔 철학의 목적, 역사와 이념의 통일, 451~452쪽)

--------------------------

2010년대에 들어 처음 읽은 책이 <오뒷세이아>였고, 그해 4월 30일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열린 <인문고전강의> 출간 기념 강의에서 선생님을 처음 뵀다. 그 인연으로 그해 '읽기와 쓰기'를 시작으로 고전연속강의 시리즈를 듣고, 2014년부터 시작된 '철학고전강의'와 '실천학'을 5년간 빠지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올해는 수업이 없어 미학/신학강의를 복습하면서 이런 저런 책을 읽다가 작년 강의 게시판에 선생님이 2019년에는 <철학고전강의>를 에세이처럼 여러번 읽으라는 말씀이 기억나 올해 마지막 책으로 다시 읽게 됐다. 

지난 10년간 생업에서는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음에도 학생 노릇 계속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년부터 '문명과 사상'강의가 이어진다면 역시 빠지지 않고 듣는 것이 유일한 목표. 

'훌륭한 학생'은 선재先在하는 '본'本(paradeigma)이며, 현재의 과정에 임臨해있는 작용인이며 이 과정이 도달해야 할 목적(telos)이다. 

공빈(지음), 허강(옮김), <구마라집 평전>, 부키, 2018

이종철의 <중국 불경의 탄생>에서 구마라집의 번역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구마라집이 택한 전술은 일차적으로는 '자유로운 의역'에 있었다. 실제로 구마라집의 번역은 단순한 의역에 그치지 않고 거의 창작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가 번역한 <중론>이나 <대지도론>도 텍스트 비판(text critic)의 입장에서 검토해보면, 구마라집 자신이 편집했다 할 정도로 자유로이 자신의 견해를 첨가하거나 삭제해 만든 것으로 현대적 의미의 온전한 번역서로 보기는 어렵다... 구마라집이 택한 이차적 전술은 역장에서 설법을 병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허가받은 특정 인물만을 출입시켰던 현장의 역장 분위기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구마라집이 역경 작업 그 자체보다는 인도불전의 내용을 중국인에게 알린다는 포교의 의미에 더 역점을 두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구마라집의 '자유로운 의역'은 중국인 조력자와 '공동작업'한 결과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종철, <중국불경의 탄생>, 28~29쪽)

구마라집은 현장과 함께 범어나 호어로 된 불교 경전을 한자로 옮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인도 출신의 승려였던 아버지와 구자국 출신의 어머니에게 태어난 구마라집은 범어와 호어를 모두 할 수 있었으며, 전진의 장수 여광에게 잡혀지냈던 십육년의 세월동안 한자를 익혀 이후 중국어를 모국으로 하는 제자들과 삼백여권의 불교 경전을 한자로 옮겼다. 구마라집의 번역을 구역, 현장의 번역을 신역으로 구분할 만큼 불교 경전의 한문 번역에서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열반'이나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핵심 개념들이 그가 옮긴 단어라고 한다. 하지만 번역은 그에게도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남긴 말들은 번역의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럼에도 자신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범문을 중국어로 바꾸면 그 문장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립니다. 아무리 큰 뜻을 터득하더라도 문장의 양식이 아주 동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밥을 씹어서 남에게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맛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게 하는 것입니다."(480쪽)

"나는 사리에 밝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으나 과분하게 불경 번역을 맡고 말았소. 번역한 것이 삼백여 권인데 오직 <십송률>만 번잡한 것을 줄이지 못했소. 근본 뜻을 보존한다면 어긋나거나 빠트린 것은 없을 것이오. 나는 그저 내가 번역한 모든 경전이 후세에까지 세상에 전해져 함께 널리 퍼지기를 바랄 뿐이오. 이제 많은 사람에게 성실하게 맹헤하는바 내가 번역하여 옮긴 것에 잘못이 없다면 화장한 후에도 내 혀만은 불에 타지 않을 것이오."(639쪽)

션 매커보이(지음), 이종인(옮김),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 작은사람, 2015

1. 셰익스피어의 언어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런던의 극장을 위해 희곡을 썼던 당대의 다른 극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으로 '독자'를 유념하면서 글을 쓴것은 아니었다."(25쪽)
 "읽히기보다는 들어 줄 것을 예상하면서 쓰는 글은 읽히기 위한 출판을 목적으로 쓰는 글보다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뚜렷한 리듬과 반복되는 단어, 특정한 문구와 표현 방식을 갖고 있다."(27쪽)
"요점은 '순정한' 텍스트는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상황과 목적에 따라 다른 텍스트가 존재하며, '확정본'이란 없다."(38쪽)

2.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장
"첫째,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 간다. 그것은 교묘하게 현실을 재현하여 관객의 찬단을 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둘째, 결과적으로 '불신의 정지'는 불필요한데 그 누구도 현실이 아닌 대체 현실을 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이런 게임은 관객에게 연극에 참여하는 차원에서 작용하는 깊은 통찰을 안겨 준다."(83쪽)

5. 셰익스피어의 장르
"대체로 셰익스피어는 코미디를 맨 먼저 썼고 그다음에 사극, 이어 비극으로 나아갔으며, 로맨스 극을 쓰고 작가로서 경력을 마감했다."(164쪽)

8. 비극
"셰익스피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대하여 직접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객관적 증거는 없다. 런던의 공공 무대에서 상연되었던 그대 초기의 잉글랜드 비극들은 고대 비극의 개념을 형식적으로만 차용했을 뿐이다."(273쪽)

**<폭풍우>를 읽고 9. 로맨스를 읽어 볼것. 


김웅(지음), <검사내전>, 부키, 2019(43쇄)

저자의 이력이 탐탁치 않아 적었던 내용은 지웠다. (2020년 2월)

개러스 데일(지음), 황성원(옮김), 홍기빈(감수,해제), <칼 폴라니-왼편의 삶>, 마농지, 2019

- 주요 영향
"폴라니는 역사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아들러의 사상과, "선험적으로 사회화된 개인"이라는 개념, 그리고 칸트의 윤리적 보편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결합하려는 시도(자본주의 물신화와 소외의 경향이 다른 인간들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집단의 지상명령은 이제 맞서 저항하는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에 매혹되었다."(153쪽)

- 핵심 과제
"폴라니는 자신이 추구하는 경제학적, 경제사학적 의제가 더 넓은 영적-정치적 사명에 기여하리고 믿었다...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같은 정치적 성취는 시장 체제 덕분에 우리에게 주어졌다. 정치적 자유를 희생해야 경제 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신화나, 경제행위를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개인이 내린, 희소성에 따른 선택으로 바라보는 주류의 사고를 물리치는 일은 경제학자들의 몫이다. 비판적인 경제사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철학자에 준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정의로우면서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음"을, 만일 이를 위해 생산 능률을 약간 떨어뜨리거나 더 절약해야 한다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개별 문명의 장엄한 도전"은 "우리의 산업 경제를 인간 사회의 구조로" 흡수하는 문제에 접근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역사적 방법론 같은 "더 넓은 개념들"을 정교하게 다음을 것을 요구했다. 폴라니의 연구 의제에서 핵심 과제는 바로 이것이었다."(333쪽)

** 해제 
" 그가 새로이 발견한 이 '통합적' 의미에서의 경제란 바로 2천 년 훨씬 이전에 아테네에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의 경제였다.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좋은 삶'을 최고의 목적으로 볼 것이며, 좁은 의미의 돈 계산, 이익 계산뿐만이 아니라 이 '좋은 삶'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이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벌이는 모든 활동을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할 것이며, 인간과 자연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교호하는 과정인 실체적 경제를 그 속에서 '제도화된 과정'으로 파악해야만 인간의 경제가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540쪽)

"경제는 본래 '좋은 삶'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활동이며 이는 인간과 사회의 자연의 공존과 화해와 기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깨달음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제학이 필요하다. 인간을 알량한 경제적 이익 계산자로서가 아니라 웃고 울고 땀흘리고 사랑하며 삶을 삶으로 즐길 줄 아는 온전한 생명체로 바라보는 경제학이 필요하다. 이러한 '통합적' 경제학이라는 생각의 홀씨가 어떻게 하여 인류의 의식이라는 지평에 내려앉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그 가장 두드러진 도착점이었던 칼 폴라니라는 인물의 삶을 보아야 한다."(541쪽)

박상익(지음), <번역청을 설립하라>, 유유, 2018

2006년에 출간된 저자의 <번역은 반역이다>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전작 출간 이후 '신문, 잡지 등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가려 뽑아 다듬은' 것이라고 하며, 오늘날의 번역 현실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되고 있기에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책에서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한국어 텍스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민간 출판 산업에만 맡겨두지 말고 국가가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요약한 주장이 '번역청을 설립하라'이고 실제 청와대청원까지 진행했었다고 한다. 아직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없는 현실에서 가치있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일본인들에게 세계적인 수준에서 사고한다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깊이 사고한다는 것이지 영어로 사고한다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것은 외국어가 약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로울 일본인들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많이 받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반면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과학의 기본 개념을 파악하도록 잘 가르치지도 않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느닷없이 영어로 과학을 가르친다. 명문대학일수록 자연대, 공대, 의대에서 물리, 화학, 생리학 같은 기초 분야에 영어 교재가 쓰인다. 내용만 익혀도 부족할 시간에 외국어 부담까지 겹치니 한국어로 익혔을 때와 비교하면 절반도 못 배운다. 한국의 기초과학은 외국으로 유학 갈 것을 아예 상정하고 가르치는 셈이다."(86쪽)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