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신로(지음), 장윤선(옮김),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강의>, 교유서가, 2016

"'철학'도 '신앙'도 (우리가 그 위에, 또 그 안에 놓여 있는) '진실한 것(vera)을 추구하는 진지한 '공동 탐구'의 유대 속에서만 다져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자 후기, 351쪽)

"결론은 '내 위에 계시는 당신 안에서(supra me in te)'라는 부분입니다. 기억은 자기 자신의 것이고, 자기 자신의 내면성을 구성합니다. 기억 안에서 신을 찾아보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망각론'과 '오류론'을 거쳐 '진리론'에 이르러,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로서의 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것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보다도 더 깊은 곳이었습니다."(15강, 메모리아 안에서의 신의 장소 탐구(10권 4), 313쪽)

"키에르케고어와 데카르트 모두 자기에게는 '신체'라는 요소가 결여된 것으로 보고 무시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그에 비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를 우선 '사람'이라는 존재로 확인하고,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296쪽)
 또한 우리 인간보다도 '더 안의' 것이란, 마음속에서 판단을 바르게 이끄는 '이성'의 움직임이나 자기 자신을 아는 움직임, 또는 이러한 자기 마음의 깊은 곳에서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어떤(=신) 존재이고, 그 어떤 존재에 대해 일종의 예감을 부여하는 영혼의 작용입니다."(14강, 메모리아 안에서의 신의 장소 탐구(10권 3), 300쪽)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의 자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남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 기억의 밑바탕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진짜 '자기'입니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난 경험이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아름다움이란 자기의 바탕을 만드는 것이고, '아름다움'을 아는 것을 통해 사람은 진정한 '자기'를 알게 됩니다." (13강, 메모리아 안에서의 신의 장소 탐구(10권 2), 283쪽)

"'교회공동체란 어떤 것인가'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즉 교회공동체는 진정한 즐거움을 나눠 가지며, 유한한 운명의 나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고, 신의 나라의 같은 시민으로서 이 세상을 함께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 사도들을 포함해 우리를 앞서 간 모든 사람들, 내 뒤에 계속해서 올 모든 사람들, 그러니까 나와 생애를 함께하는 사람들이고, 그들 앞에서 '진실을 실행하는' 것이 <고백록>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강, 메모리아 안에서의 신의 장소 탐구(10권 1), 258쪽)

"어머니는 자신의 육신으로는 나를 시간의 빛에 태어나게 하셨고, 자신의 마음으로는 나를 영원한 빛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quae me parturivit et carne, ut in hanc temporalem, et corde, ut in aeternam lucem nascerer.(IX, viii, 17)"
(11강, 구원의 편안함, 어머니의 죽음(9권 2), 239쪽)

"오히려 카시키아쿰 저작에서 '학문의 교만'이란 신플라톤주의라기보다는 변론술 학교에서 말하는 식의 어떤 것으로 보는 편이 적절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10강, 구원의 평안함, 카시키아쿰(9권 1), 227쪽)

"여기에서는 '예수 크리스트를 통해 부여된 아버지의 은혜(gratia)이외에는, 죄의 포로가 되어 있는 몸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회심의 근본이 있습니다.(205쪽)
예속 상태에 있는 자신의 추함을 여실히 직시한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의 마지막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9강, 회심의 성취, 정원장면, '톨레 레게'(8권), 207쪽)

"철학이란 소중한 어떤 것에 대한 이해가 얻어질 때, 거기에서 그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삶의 방식'이 바뀌게 되는 그런 종류의 이해를 가져다주는 지식 탐구입니다. 철학사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특정 철학자의 '학설'을 배우는 것은 본래의 철학이 아닙니다.(152쪽)
'영적 실체의 자존성'이란,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 영혼의 자존성, 즉 인간의 혼의 자존성입니다. 그것은 물체와는 원리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을 이 철학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심어주었습니다.(157쪽)
그것은 빛(모든 것을 존재하는 하는 근원)과 만나서 거기에 강렬하게 이끌리는 동시에 빛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길항하는 마음속 격동으로서 경험하게 됩니다... '분열되는 자기 안에 놓이는' 격렬한 체험이었습니다.(8강, 플라톤 철학과의 만남(7권), 160쪽)

"5권 서두와 8권 서두의 이와 같은 조응은 5권이 이향으로부터 귀향으로 향하는 전환의 시점이라는 것, 즉 거기에서 회심의 성취로 가는 길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134쪽)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성서>의 영적 독해법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성서>에 관한 기존의 생각, 즉 <성서>의 문체는 졸렬하며 여자들의 유치한 읽을거리일 뿐이라는 생각을 바꾸게 하면서, <성서>의 영적 의미를 읽어내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진리'로서의 '신'에게 향하는 길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내면에 열렸습니다. 그것은 회심의 성취로 향하는 중요한 한걸음이었고, 또한 평생에 걸친 '신 탐구의 길'이 열리는 단초였으며, 이후 그의 설교자로서의 영적 골격을 만들게 되었습니다.(7강, 귀향(conversio)의 과정과 요소들, 139쪽)

"신에게로의 귀향(reditio, conversio)은 무엇보다 이런 마니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을 텐데, 여기에서 '이향'의 세 가지 요소인 '애욕', '변론술', '마니교'는 사실상 서로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만큼 '귀환'의 과정도 복잡하고 미묘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6강, 이향(aversio)의 요소들, 121쪽)

"즉, 1권부터 9권까지의 이른바 '자전적 부분'을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에게서 하느님의 은총이 실현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읽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성적 해석에 따르면 회심 과정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이향(aversio)'의 과정과 하느님에게 되돌아가는 '귀향(conversio)'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고백록> 집필 당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주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스티아에서의 경험이후, 고향으로 돌아가고 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는 어떤 경위로 성직자가 되고 주교까지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이것은 <고백록>이 자전문학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5강, 회심의 과정(이향과 귀향), 87~88쪽)

"'내안에 존재하는 신'의 '안에 있는 존재'로서, 내가 어떻게 해서 확고해져가는가에 '회심(conversio)'이라는 주제가 있고, 그것이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가를 언명하는 부분에 <고백록>의 주제가 있습니다."(4강, 제1권 2~6장, 73쪽)

"이렇게 '부르다'(invocare)'라는 말과 '찬미하다(laudare)'라는 말은 <고백록>을 구성하는 가장 근간적인 말이 됩니다.... <복음서>란 그 제자들이, 그럼에도 육신의 예수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동안, 얼마나 줄곧 예수를 오해했는가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3강, '거대한 존재', 60~61쪽)

"따라서 <고백록>의 첫 문장은 이 책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의지하는 '주여'라고 불리는 신에 관해, 그 자체의 '존재'와 그에 걸맞은 응답을 표현하는 한편, 아우구스티누스의 깊은 내면에서 그에 걸맞은 응답을 표현하는 한편, 아우구스티누스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난 신앙고백이자, '종교' 본연의 존재 방식을 근원에서 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문장을 이어지는 다음의 한 문장과 함께 '종교의 단락'이라고 부릅니다.(2강, 제2권 도입부의 두 행에 대해)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자신의 진실은 신만이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진리의 내면성과, 자기의 진실은 신만이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진리의 초월성이라는 두 가지가 동시에 성립됩니다. 여기에서는 단지 아우구스티누스 개인의 역사가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라는 개인으로 예시된, 신과 인간의 내적인 본성적 관계가 해명되는 것이며, 나아가 인간 일반에 대한 신의 은총의 거대함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내면성'은 <고백록>을 유럽 문예사 또는 세계 문예사에서 달리 비교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문예로 만들어주는 특징입니다. 아마도 크리스트교 문예를 통틀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비할 수 있는 책은 없을 것입니다. 비슷한 책들이 얼마든지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단 한 권 뿐인 책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전'입니다." (1강, <고백록>이라는 책, 11쪽)

김정선(지음),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유유, 2017(19쇄)

"그러니 문장을 다듬는 일에 무슨 법칙이나 원칙 같은게 있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이제껏 수많은 저자들의 문장을 다듬어 왔지만, 내가 문장을 다듬을 때 염두에 두는 원칙이라고는, '문장은 누가 쓰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에 따라 쓴다'뿐이다. 나머지는 알지 못한다." (머리말, 9쪽)

- 한국어는 영어처럼 '되감는' 방식의 적용이 어려우므로 문장의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서술해야 한다. 
- 최대한 간결하게 쓴다. (~적, ~의, ~것, ~들, 이중피동문 등을 주의)
- 주어와 술어의 일치에 유념한다. 

선생님은 글을 쓸 때 다음과 같이 하라고 하셨다. 

- 초고는 만년필로 직접 쓴 후 여러번 고친다. 
- 어느정도 정리된 초고를 타이핑 한 후 출력한다. 
- 출력된 재고는 소리내어 읽으면서 자연스러운지 확인하며 다시 고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지음), 이인웅(옮김), <파우스트>, 문학동네, 2013(19쇄)

** 아래 인용문은 모두 강유원(지음), <문학고전강의>의 35~37강, 괴테 <파우스트> 에서 인용한 것임

35강 : 삶과 앎과 자연의 합일을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인간 편력
36강 : 감각적 삶을 통해 감각을 초월하고자 노력하는 파우스트
37강 : 심오하고 포괄적인 가치의 영역으로 올라서는 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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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독일 낭만주의의 핵심은 주제입니다. 독일 낭만주의의 핵심이 주제라고 할 때, 낭만주의가 다루는 가장 고유한 주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사적인 삶의 영역에서 시작하여 사회와 국가 생활을 거쳐서, 학문과 예술을 거치고, 철학과 신적인 영역까지 편력하는 인간입니다. 달리 말하면 전인적 인간, 신이 된 인간, 신적 인간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은 전체로서의 우주입니다."(350쪽)

"세계는 신이 창조한 작품입니다. 이 세계는 인간의 지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고귀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우주를 파악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진 인간이 낭만주의적 인간입니다. 흔히 말하는 '파우스트적 인간'입니다. 그는 이 우주를 자신의 지성으로써 완전히 파악하고, 이 우주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인간입니다. 자신의 지성으로써 갈 수 있는 끝까지 가서, 인간을 넘어서는 그 지점까지 가보려는 인간입니다. 굉장히 자기학대적이라고 할 그런 충동입니다. 이는 사상으로서의 독일 낭만주의가 가진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간상입니다.(353쪽)

"다시 말해서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파우스트>는 마지막에 성모의 도움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파우스트>는 신비적 자연주의와 가톨릭 전통을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358쪽)

"이로써 파우스트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의 목표가 제시되었습니다. 지적인 탐구와 자연과의 합일이 그것입니다."(362쪽)

"자연과 하나가 되겠다는 파우스트의 자연적 신비주의 또는 신비적 자연주의는 그레첸과의 결합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368쪽)

"이것은 파우스트의 마지막 말입니다. 파우스트가 지금까지 겪어온 고난의 도정에서 얻은 지혜는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앞에서 "근심"이라는 여인에게 말한 것처럼, 천상의 전망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기개를 완전히 발휘한 끝에서 그것을 이룩하였고 지금 최고의 순간을 누리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파우스트는 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376쪽)

"서곡에서 신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파우스트는 노력하였고 방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구원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유한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철두철미하게 깨닫고 그것의 한계까지 밀어부치면, 그 지점에서 구원의 전망이 열릴 것입니다. 구원 자체만을 갈급하면 역설적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파우스트는 그것을 보여준 것입니다."(377쪽)

칼 폴라니(지음), 홍기빈(옮김), <거대한 전환>, 길, 2009(3쇄)

"19세기 문명은 외부 혹은 내부의 야만인들의 공격으로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그 문명의 생명력을 잠식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황폐화도 아니었고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나 파시스트 하류 중산 계급의 반란도 아니었다. 그것이 붕괴한 것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든가 과소 소비 혹은 과잉 생산과 같은 이른바 경제 법칙 같은 것들의 결과도 아니었다. 그것이 해체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원인이 있었으니, 그것은 자기 조정 시장의 활동으로 사회가 절멸당하지 않기 위해 취해진 여러 조치들이었다. 아직 서부 개척지가 남아 있던 시기의 북아메리카에서 존재했던 것과 같은 예외적 상황을 뺀다면, 19세기의 사회적 역동성을 제공하고 19세기의 사회를 결국 파괴해버렸던 전형적인 긴장과 갈등을 낳았던 것은 조직된 사회적 삶의 기본 요건들과 시장 사이의 갈등이었다. 대외적 전쟁들은 그저 그 파괴의 속도를 앞당겼을 뿐이다."(21장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 586쪽)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마침내 산업과 정치 제도가 충돌하여 사회 전체가 마비될 사태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 대한 파시즘의 해결책은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 산업 영역과 정치 영역을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적 제도들을 깡그리 뿌리뽑아버릴 것이며, 그것을 대가로 삼아 시장경제를 개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붕괴의 위험에 처한 경제 제도를 소생시킬 것이며, 그런 가운데 인민들은 재교육 과정을 밟게 될 것이었다."(20장 사회 변혁과 역사가 맞물려 진행되다, 566쪽)


"이 결정적인 10년 동안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오로지 디플레이션을 이루기 위한 정책들만 완고히 고집하여 권위주의적인 정부 개입주의까지 지지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결과 민주 세력들이 결정적으로 약화되었고, 이렇게 민주 세력이 극적으로 약화되는 바람에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을 파시즘적 파국이 현실화 되는 것에 일조했던 것이다."(19장 인민 정부와 시장경제, 559쪽) 


"이러한 방식으로 시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긴장은 시장과 다른 주요 제도적 영역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상황에 따라 어떤 때에는 정부 영역의 작동에 어떤 때에는 금본위제의 작동에 또 어떤 때에는 국제 정치의 세력 균형 체제의 작동에 그 긴장을 옮겨갔다."(18장 체제 붕괴의 긴장들, 524쪽) 


"자기조정이 망가진 것은 보호주의의 결과이다. (507쪽) 

따라서 미국은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과 부정적인 방향 모두에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것에는 결국 사회적 보호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우리의 핵심 주장을 입증해주는 충격적인 증거가 되었다.(509쪽) 

무역을 하게 되면 서로서로 이익을 본다는 주장은 이론으로야 빈틈없는 것이겠지만, 그 지역의 원주민들이 이를 재빨리 깨닫지 못하거나 아마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이들에게 자유무역의 이상을 설파하는 데에는 폭력밖에 길이 없었던 것이다... 몇천 년에 걸쳐 자신들의 자연적 욕구를 나름의 방향으로 발전시켜온 원주민들의 마음속에 유럽의 공산품들에 대한 불타는 욕망이 불현듯 소아나 그것을 얻기 위해 제발로 자기들의 자원을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는 예정 조화 따위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519쪽) (17장 자기조정기능, 망가지다) 


"시장경제의 파괴가 가장 급작스럽게 나타난 곳이 바로 화폐 영역이었다. 다른 어떤 시장에서도 1931년 9월 21일에 일어난 영국의 금본위제 포기는 물론이고, 그로 촉발된 1933년 6월 미국의 마찬가지 조치에 비견할 만한 대사건은 생겨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금본위제의 최종적인 실패는 바로 시장경제의 최종적인 붕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경제적 자유주의가 시작된지 100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그 동안 시장경제는 보호주의의 반작용에 부닥치게 되었고, 이제 그것이 시장경제의 마지막 보루에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다. 자기조정 시장의 세계는 이제 사라지고 새로운 사상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자급자족의 고립주의를 내세운 정치 세력이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은 채 곳곳에서 폭발적으로 터져나와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앞세워 다수는 이러한 사태 앞에서 넋을 놓고 명연자실한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16장 시장과 생산 조직, 500~501쪽) 


"시장경제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응과 농민의 대응은 모두 보호주의라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전자는 주로 사회 입법이나 공장법의 형태를 띠었고 후자는 국내 농업 진흥을 위한 보호 관세와 토지 관련법의 형태를 띠었다...토지와 관련된 사회 계층들은 시장 체제와 타협하는 방향을 지향했던 반면, 넓은 의미의 노동계급은 시장 체제의 여러 원칙들을 거침없이 깨어버리고 그것에 공공연하게 도전하는 일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15장 시장과 자연, 485~486쪽) 


"경제적으로 보자면 영국과 유럽 대륙의 사회 보호 방법은 거의 동일한 결과를 가져왔다. 양쪽 모두 얻고자 했던 것을 얻어냈으니, 그것은 노동력이라고 알려져 있는 생산 요소가 거래되는 시장을 무너뜨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노동 시장이라는 것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려면 물가 수준이 하락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임금이 떨어지도록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적 용어 대신 삶의 언어로 이 말을 다시 해보자. 이는 노동자들의 소득이 극도로 불안정하게 되고, 직업적 전문성이 완전히 사라지며, 오로지 시장의 변덕에 휘둘리고, 그저 일자리와 높은 임금을 좇아 양떼처럼 이리저리로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항상 엉덩이를 땅에서 뗀 채 사방의 눈치를 살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14장 시장과 인간, 462쪽) 


"우리는 일단 두 가지 견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첫 번째, 현실에서 힘을 갖게 되는 것은 오로지 분파적 이익뿐이며 사회 전체의 전반적 이익이란 결코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와 쌍둥이 처럼 붙어 있는 것으로, 인간 집단의 이익을 오로지 화폐 소득만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생각이다."(13장 자유주의 교리의 탄생 2, 계급적 이해와 사회 변화, 417쪽) 


"이 기묘한 역설을 능가하는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자유방임 경제가 의도적인 국가 활동의 산물이었던 반면, 그 뒤에 나타났던 자유방임 제한 조치들은 완전히 자생적으로 시작된 것들이었다."(12장 자유주의 교리의 탄생, 394쪽) 


"앞에서 이중적 운동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되돌아가보자. 이것은 사회안에서 작동하는 두 가지 조직 원리의 활동으로 인격화할 수 있다... 첫째 원리는 경제적 자유주의로서, 자기조정 시장의 확립을 목적으로 사업에 종사하는 사회 계급의 지지에 의존하며, 대체로 자유방임과 자유무역이라는 방법을 택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 보호의 원리로서 인간, 자연뿐만 아니라 생산 조직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시장의 해로운 운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 즉 주로 노동계급과 토지 계급의 다양한 지지에 의존하며, 보호 입법, 경제 규제를 위한 연대 및 기타 경제 개입의 수단들을 방법으로 삼는다." (11장 인간, 자연, 생산 조직, 381쪽) 


"자기 조정시장이라는 체제가 무자비한 자연 법칙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으로 믿어지게 된 이상, 시장의 모든 족쇄를 풀어놓는 일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필연이라고 여긴 것이다. (365쪽) 

한마디로 진정한 문제는 예전에 그의 경제적 존재가 묻어들어 있었던 자연과 인간과의 여러 관계들이 완전히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으며, 빈곤 문제란 이 거대한 사태의 경제적 측면에 불과하다. 오언은 입법을 통한 개입과 방향 제시로 이 파괴적인 힘과 맞서지 않는 한, 실로 거대하고 영구적인 사회악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날 것이라는 올바른 주장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369쪽) 10장 정치경제학과 사회의 발견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기 그들(빈민)을 하나의 '협회'(college) 또는 법인(corporation)으로 조직하여 자신들의 노력과 노동을 하나로 합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뿐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훗날 빈곤 문제에 대한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 사상의 심장을 이루는 생각이다. 오언의 '협동조합촌'(Villages of Union), 샤를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프루동의 '교환은행', 루이 블랑의 '국민작업장', 라살의 '국영 공장'은 물론, 이점에 관한 한 스탈린의 '5개년 계획'조차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간다. 기계가 출현하고 그로 인한 현대 사회의 거대한 혼란이 처음 생겨난 이래 이 빈곤 문제에 대해 수많은 해법이 제시된 바 있지만, 대부분 제안들의 핵심 아이디어는 밸러스의 책에 응축된 형태로 담겨 있는 것이다." (9장 구호 대상 극빈자 문제와 유토피아, 327~328쪽) 


"스피넘랜드 법이 철폐된 날이야말로 근대적 노동계급의 진정한 탄생일이라고 할 만하다. 이렇게 근대적 노동계급은 기계 문명에 내재한 위협에서 사회를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직접적 이익으로 삼는 운명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태어났다. 하지만 이는 미래에 벌어질 이야기이며, 지금으로서는 노동계급과 시장경제가 역사적으로 동시에 태어났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8장 스피넘랜드 법 이전의 것들, 스피넘랜드 법의 결과들, 317쪽) 


"결정적인 핵심은 다음과 같다. 노동,토지,화폐는 산업의 필수 요소이며, 이것들도 시장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사실 이 시장들이야말로 경제 체제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그러나 토지, 노동, 화폐는 분명 상품이 아니다.... 이들 어떤 것도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구이다.(243쪽) 

시장 매커니즘을 노동, 토지, 화폐라는 산업 요소들에까지 확장하게 된 것은 상업 사회라는 틀에 공장제를 도입하면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인간 사회는 이제 모든 면에서 경제 체제의 부속물이 되어버렸다."(247쪽), 6장 자기고정 시장 그리고 허구 상품 : 노동, 토지, 화폐 


"경제 체제는 일반적인 여러 사회 관계 속에 잠겨 있었고, 시장은 단지 당시의 제도적 구조에 딸려 있는 특징 이상이 아니었으며, 그 제도적 구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의 권위에 의해 통제 및 규제되고 있었다." (5장 시장 패턴의 진화, 228쪽) 


"19세기 내내 학문의 이름으로 지겹게 울려퍼졌던 주문의 염불과는 달리, 교환을 통해 이익과 이윤을 얻는다는 동기가 인간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181쪽) 

인간은 물질적 재화의 소유라는 개인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행동하여 지키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 사회적 권리, 사회적 자산이다.(185쪽) 

넓게 보자면 우리에게 알려진 바의 서유럽 봉건제가 끝나는 시점까지 존재했던 모든 경제 체제들은 상호성 원리, 재분배 원리, 가정 경제의 원리 혹은 이 세 가지 원리의 조합을 통해 조직되었다는 것이 이 장의 논지이다."(199쪽) 4장 사회와 경제 체제의 다양성 


"기계에 의한 생산이 상업 사회에서 일어나면, 현실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적, 자연적 내용물이 상품의 형상을 뒤집어쓰게 된다는 실로 엄청난 변화가 벌어진다... 이로 인해 인간의 상호 관계가 마디마디 끊어질 수밖에 없으며, 인간이 삶을 영위할 자연환경도 반드시 쑥밭이 될 수밖에 없음이 명명백백하다는 것이다." (3장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 179쪽)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경제는 해체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서면 문명 전체가 전환을 겪게 된 바, 이 둘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고리는 바로 국제 금본위제의 붕괴였다. (134쪽) 

그렇지만 19세기 문명이 경제적 문명이었다는 말은 이와 완전히 구별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말은 오로지 19세기 문명만이 인간 행동의 무수한 동기들 가운데에 역사상 어떤 인간 사회에서도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되는 법이 거의 없었던 동기, 더욱이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행동과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준까지로는 결단코 올라선 적이 없는 동기를 스스로의 기초로 삼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기란 바로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체제는 바로 이러한 동기에서 도출된 체제라는 점에서 독특하다."(152~153쪽) 2장 보수적인 1920년대, 혁명적인 1930년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이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보호 조치이든 취하는 족족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을 망가뜨리고 산업의 일상적 작동을 혼란에 빠트렸기에 사회는 또 다른 방향에서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시장 체제의 발전 과정은 미리 정해진 길을 따라가게 되었고, 결국에는 자신을 기초로 삼는 사회 조직마저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장 백년 평화, 94쪽) 


"인간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위치는 19세기 특유 - 자유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함께 나타난-의 '경제주의적 편견'에 의해 크게 오해받아왔다. 인간은 모두 자기의 이익이라는 '경제적 이해'로 움직이는 존재이며, 따라서 그렇게 구성되는 시장경제의 경제 법칙이야말로 전 역사에 걸쳐 모든 경제와 나아가 사회까지 지배한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당시 최신의 경제 인류학 및 고대 중세사의 성과를 빌려 이러한 관념이 19세기인들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철저히 논증한다. 경제는 사회 과정에 '묻어 들어'(embeded)있는 것이며, 특히 시장경제는 인류 사회의 보편적 경제 형태이기는커녕, 최소한 200년 전까지는 어디서나 '부수적 존재'로 철저하게 억압되어왔다는 것이다. 개인의 이윤 동기로 조직되는 시장이라는 형태는 16세기 영국에서처럼 자유롭게 풀려날 경우 급속도로 사회와 인간과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경제 활동을 완전히 시장 제도 하나만으로 조직하여 그것으로 자기 조정 시장을 세운다는 것은 적어도 지난 수천 년 수만 년의 인류사에 비추어보면 '자연적'이기는커녕 극히 인위적인 유토피라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옮긴이 해제, 623쪽)


헤시오도스(지음), 천병희(옮김), <신들의 계보>, 숲, 2009

** 아래 인용문은 모두 강유원(지음), <철학고전강의>의 1~2강, '희랍 우주론의 원형,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에서 인용한 것임

1강 : 우주론, 철학적 사유의 시작
2강 : 희랍 사유에서 우주의구조와 생성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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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문헌인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는 우주론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안에는 고대 희랍 사람들이 생각한 우주의 구조와 생성 과정에 관한 논의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34쪽)

"지금 <신들의 계보>를 읽는 이유는 이러한 우주론 안에 철학적 사색의 맹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신화(뮈토스)에서 이성(로고스)으로의 전환,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일단 배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37쪽)

"우리가 집중적으로 읽을 부분은 "서사"부터 "최초의 세가지 힘들"까지입니다. 여기에 우주 생성론의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신들의 계보>는 우주론이므로 신들의 족보만 중요하게 여기면 안 되고, 이 우주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합니다."(39~40쪽)

"첫째, "신들의 계보"라는 제목 안에 함축되어 있는 뜻은 '우주의 위대한 힘들의 계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43쪽)

"따라서 이것은 우주 생성론이면서 동시에 우주 생성론의 기원을 밝혀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헤시오도스는 자신의 시에 자신을 등장시키는데, 그렇게 등장하여 신으로부터 우주의 생성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것을 시로 씁니다. 그렇게 쓴 시가 <신들의 계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우리의 앎은 신에게 배우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인식론적 태도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진리를 닮은 것'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45쪽)

"여기서 우리는 '올바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헤시오도스의 이 시에 따르면 올바름은 법도를 지키는 것, 자기 영역을 잘 지키는 것, 영역을 넘보지도 넘어 나오지도 않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48쪽)

"왕은 시인이면서 동시에 인간 질서를 창출하는 존재입니다. 이로써 신과 시인, 인간을 다스리는 왕의 관계가 이야기되었습니다. 이 지점에 오면 <신들의 계보>는 우주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우주가 인간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통하여 관계를 맺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49쪽)

"첫째가 기원, 즉 아르케를 묻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가 어디서 생겨났느냐, 어떻게 생겨났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그 시초(카오스, 최초의 벌어짐)부터 끝까지, 즉 세계 전체를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신들의 계보>는 단순히 신들의 족보 묶음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신들의 계보>는 신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철학의 선구자"가 됩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성주의 철학관에 의하면 신화(뮈토스)에서 이성(로고스)으로 나아가는 것이 철학이지만, 우리는 신화와 철학의 경계선을 그렇게 뚜렷하게 알 수 없으며, 그에 따라 이러한 신화에서도 철학의 단초를 찾아보아야 합니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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