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외 외(지음), <뉴 스쿠스쿠 일본어 3>, 파고다, 2017

일본어 교재 #3. 2017년 12월 14일~2018년 2월 19일, 

언어는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7)

캐빈 패스모어(지음), 이지원(옮김), <파시즘>, 교유서가, 2016

"파시즘의 특징을 열거하는 작업은 일견 간단해 보인다." (1장, A이면서 A가 아닌 :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20쪽)
 : 극단적 내셔널리즘,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독재, 인종주의 , 반유대주의, 유일 정당, 준군사조직, 실제적 폭력이나 폭력의 위협, 코포라티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반자본주의, 반사회주의, 반공산주의, 반자유주의, 반의회주의, 반입헌주의, 
 : 초월에 대한 거부(에른스트 놀테), 독점 자본주의의 가장 반동적인 분파에 의한 독재(코민테른), 외적인 양태는 다양하나 그 핵심에는 재탄생 신화에 바탕을 둔 대중주의적이고 극단적인 내셔널리즘이 자리한 정치 이데올로기(로저 그리핀), 정치 종교(에밀리오 젠틸레)

"종합하자면, 급진적 우파는 단순히 극단적 내셔널리즘이나 아노미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다. 급진적 우파는 민족국가 건설과 제국주의, 그리고 인종의 질과 효율성의 향상에 대한 관심이라는 맥락 속에서, 일자리와 경제적 보상, 성공적인 교육, 정치적 명예를 두고 사회주의자, 소수 종족, 페미니스트, 자유주의자 등과 벌이는 매일의 경쟁 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2장, 파시즘 이전의 파시즘?, 74쪽)

"파시즘이 성공한 원인은,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선택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의회 정치적 수완과 대중 동원을 결합했기 때문이다." (3장, 이탈리아 : 철권으로 만든 역사, 94쪽)

"무솔리니와 마찬가지로, 히틀러는 외교 문제에 열정적이었다. 그에게는 조화로운 독일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활권을 확보하고 인종의 적과 볼셰비즘을 일소해야 한다는 오랜 믿음이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유대 영향의 제거는 - 유대인 말살은 아직 나치 정책이 아니었다 - 전쟁의 목표이자, 동시에 승리의 전제 조건이었다."(4장, 독일 : 인종주의 국가, 126~7쪽)

"역사는 인종 단일화가 엄청난 강제성을 수반하며 민주적, 인도적 가치에 심각하게 배치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나치는 가공할 노력을 기울였지만, 엇갈린 결과를 낳았다.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해 나치는 막대한 자원을 동원해야 했고, 그때까지 온당하다고 여겨진 모든 것들을 부정해야 했다. 그렇게 하고도 그들은 독일을 인종적으로 단일화하는 데 실패했다. 전쟁에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서 700만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와 노예를 징용해와야 했기 때문이다."(7장, 파시즘, 민족, 인종, 224쪽)

"파시스트들이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유대인을 적대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차이들을 허물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파시즘을 받아들인 이들 중 다수는 분명 파시즘이 그러한 차이들을 복원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8장, 파시즘, 여성, 젠더, 229쪽)

"민족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 혹은 인종적 기원이 정치적 행동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은, 사실 약간의 정밀 연구만으로도 금세 허물어지고 마는 편견일 뿐이다. 파시스트의 과학이라는 것은 편협한 사고를 법칙으로 격상시킨 것에 불과하다."





Stanley G. Payne(지음), <Civil war in Europe, 1905-1949>,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Reprinted)

[목차]

서문
연대표
정치단체들의 약어 색인 

도입 : 분쟁의 형태로서 혁명과 내전 

1부, 제 1차 세계대전과 내부 분쟁, 1905년 - 1935년
   1. 세계 대전, 혁명, 내전, 1905년 - 1918년
   2. 러시아 혁명, 1917년 - 1922년
   3.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위기, 1918년 - 1923년
   4. 사회적 갈등과 독재, 1930년 - 1935년

2부, 스페인에서의 내전, 1931년 - 1939년
   5. 스페인에서의 혁명적 전개 
   6. 혁명과 내전, 1936년 - 1939년
   7. 의미와 결과

3부, 제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내전과 내부 폭력 
  8. 유럽에서의 다중 전쟁, 1939년 - 1945년
  9.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내전 

결론

색인 

앤터미 비버(지음), 김원중(옮김), <스페인 내전,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교양인, 2015(11쇄)

[주요 연표]
1879, 에스파냐 사회주의 노동자당 설립 PSOE, Partido Socialista Obrero Español 설립
1888, PSOE 산하 노동조합조직인 '노동자 총동맹' UGT, Unión General de Trabajadores 출범
1909, 바르셀로나 봉기후 아나크로 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조직인 '전국노동연합' CNT, Convención Nacional de Trabajadores 설립
1917,  광산지역 파업, 진압에서 프랑코 활약
1919, La Canadiense 공장 파업, 세계 최초로 8시간 노동 쟁취 
1921, 안드레스 닌 등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타 중심으로 에스파냐 공산당 PCE, Partido Comunista de España 출범
1923, 카탈루냐의 총 사량관 Miguel Primo de Rivera 쿠데타, 1930년까지 독재관
1931, 1월 대학생 파업, 4월 바스크 지역에서 공화국 선포, 알칼라 사모라가 국가 수반이자 총리로 취임. 
1933, 10월, 가톨릭에 중심을 둔 보수적인 신정 국가를 꿈꾼 팔랑헤당 출범, 
          11월 총선, 여성 참정권 등 보장되고 중도 우파 집권, 새로 출범한 공화국 정부도 여전히 권위적인 통치로 일관, CNT가 전면전을 선언           
1934, 선거에 패배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라르고 카바예로(급진파)가 장악, 혁명위원회 설립 
1936, 2월, 인민전선이 15만표차로 승리하여 의회의 절대다수를 차지, 팔랑헤당은 총 득표수가 4만 6천표에 그침 
          4월, 의회 소집, 5월 마누엘 아사냐가 대통령에 취임 
          7월 18일, 프랑코를 중심으로 쿠데타 발생, 쿠데타 발생 48시간안에 모든 지역의 점유지역이 결정 
1936, 9월 4일, 라르고 까바예로가 총리로 취임, 서유럽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참여한 최초의 정부가 됨 
         9월, 스탈린이 '스페인 인민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한 캠페인'을 발표, 이후 53개국에서 3만 2천~3만 5천명이 참전 
                지식인 비중은 소수, 80%가 육체노동자들이었고 취업을 위한 참전도 다수, 소련에서는 연인원 2천여명을 파견
         10월 1일, 프랑코 총통 위임 Caudillo(지도자)로 불림, Führer나 Duce를 따라한 것
1936, 11월, 마드리드 공방전,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공화진영이 마드리드를 수성(수도는 발렌시아로 이전한 상태)
        "마드리드 전투가 실패하면서 쿠데타는 전면적인 내전으로 바뀌었고, 국민군은 외국에 더 많은 도움을 요청했으며, 
         이제 스페인 내전은 거의 세계전쟁의 양상으로 발전했다."(335쪽)
1937, 2월, 하라마전투로 전선이 교착상태, 국민군의 정예 병사가 손실 
         3월, 과달라하라 전투, 이탈리아군이 주도하였으나 장갑차 동원 작전이 실패(독일이 후에 이를 다시 개량)
                브리웨가 전투는 전쟁 기간을 통틀어 공화군이 분명하게 승리한 거의 유일한 전투 
1937, 3월 바스크 지역 공격 시작
         4월 26일 오후 4시 30분, 게르니카 폭격 시작, 시민의 1/3이 사망(1654명 사망, 889명 부상)
         "프랑코는 바스크 지역 전투를 통해 자신의 동맹군들이 적의 동맹군보다 훨씬 우수한 타격 수단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했다."(423쪽)
         4월 17일, 통합 팔랑혜당 출범, '하느님을 지향하는 제국을 위하여'가 슬로건, 프랑코는 36년 9월 이후 법률상 지도자, 37년 4월 사실상 독재자 
1937, 5월, 카탈루냐 내전 발생, 아나키스트 연합이 패배, 공산주의자들은 이 사건을 '트로츠키주의자-파시스트'의 도발로 규정 
         5월 17일 라르고 카바예로 사직서 제출, 네그린이 국무회의 의장이나 재무장관, 안드레스 닌을 포함한 통합 노동자당 지도자 전원체포
1937, 5월, 6월에 바스크 지역의 압박을 풀기위해 브루네테 전투 시작, 병참 부족과 지휘관들의 소통 부재, 
         국민군의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대실패
         공화군은 2만 5천 사상자, 장갑차의 80%, 전투기 1/3상실, 패배의 원인을 국제여단의 '제 5열의 체계적 공작'이라는 공산당의 주장 
1937, 8월, 아라곤 전투, 역시 북쪽 바스크 지역을 돕기 위한 전투였으나 이미 국민군은 산탄데르에 입성 직전. 
         10월, 북부 지역 마지막 공화지역인 히혼 합락, 병력을 남으로 재배치하고 광물자원을 독일에 채무 변재로 사용하기 시작 
1937, 12월~1월, 테루엘 전투, 의미없는 지역에서 벌어진 최악의 전투중 하나
1938, 3월, 카탈루냐 봉쇄작전 시작, 3월 우에스카, 4월 레리다, 비나로스 함락으로 마무리 
         "프랑코가 갖고 있는 승리의 칼이 빨갱이들이 장악하고 있는 스페인을 둘로 갈라 놓았기 때문에" 성전의 종식을 믿어 의심치 않음(571쪽)
1938, 3월, 네그린의 프랑스에 도움 요청, 그러나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물거품 
         4월, 영국-이탈리아 조약 체결, 이탈리아 군대의 스페인 주둔 허용
1938, 7월 18일, 쿠데타 발발 2주년, 프랑코가 총사령관이자 국가 수반, 군대의 총통이자 통합 팔랑헤당의 국가수장으로 추대 
1938, 7~8월, 에브로강 전투, 113일동안 국민군 6만, 공화군 7만 5천이 사망하고 공화군의 거의 모든 무기가 손실, 
         압도적 공군력을 보유한 국민군을 상대로 강을 건너 열린 공간에서 전투를 한 공화군 전략의 치명적 실패 
1938, 12월 카탈루냐 공격 시작
1939, 1월 프랑스 국경 민간인에 개방 20만명 이상이 통과, 2월 인민군 패잔병 입국, 1월 이후 총 50만명이 통과 
1939, 2월 카탈루냐 점령, 프랑코는 정치책임법을 발표, 반대자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것을 선언, 영국과 프랑스는 국민정부 공식 승인 
1939, 3월, 반 공산주의 쿠데타 발생, 이후 내전 종료 
1939, 8월 국가수장법 발표로 국가 비상시 국무회의 의결없이 법령, 포고문 재가 권리 확보    

[주요 고려요소]
- 공화정부는 노동자에게 무기지급을 거부, 치안대나 돌격대의 결심이 초기 향방을 결정 
- 라디오 방송, 전화국, 비행장등이 중요 역할을 수행한 최초의 현대적 쿠데타 
- 초기 전력은 13만명의 장교병사(국민진영) vs. 9만명의 장교/병사, 히틀러와 무솔리니, 미국/영국의 사업가들이 대부와 석유를 국민군에 제공 
- 공화진영은 중앙정부의 지리멸렬한 대응(우파의 반란을 진압+ 좌파 혁명 대응)과 경찰,외교관 등 공무원의 이탈로 국가 매커니즘이 붕괴된 상태 
- 반면 국민진영은 병영국가체제의 성립으로 일사분란한 지도 체제를 형성하기 시작, 특히 알카사르 작전 등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프랑코를 중심으로 단일 지도체제 형성 시작 

- 무기의 필요성으로 국민/공화 모두 외국이 도움이 필요, 국제전으로 발전하게된 요인 
- 영국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행동은 무시하면서 공화진영의 무기 수입을 감시하는 이중적 태도, 
  "영국이 전쟁 초기에 볼셰비즘의 공포에 휩쓸려 들어가기보다는 국민 진영이 신속하게 승리하는 것이 낫다고 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주요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 그들은 스페인이 소련의 영향 아래 떨어지는 것도 싫었지만 스페인이 나치 독일이나 혹은 지중해에서 자신의 주요 라이벌인 파시즘 이탈리아에게 지배당하는 것도 좋지 않게 생각했다. 그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스페인 내전이 제2의 사라예보가 되어 거대한 개입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다시 한 번 전 유럽의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736쪽)
- 독일은 새무기와 전술의 시험장이자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코를 지원, 결과적으로 융커87(스튜카기), 티거 전차 계량에 도움을 받음과 함께 바스크 지역 철광과 석탄을 보상금으로 획득 

- 내전중에서도 내전이 발생, 공화진영내 공산주의자와 그외 대결, 국민진영내 팔랑혜당 통합과정에서의 권력 다툼
- 공화진영은 애초부터 전력상 열세였으나 지도부의 분열과 무능으로 패배를 자초 

-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정상적인 '정화' 욕구로 내전 종식 후 190개 수용소에 최대 50만명을 수용, 공식적인 처형만 3만 5천명, 간접적 죽음까지 약 20만명 사망 추정 
- 프랑스에 망명중인 사람들에게는 2차 세계 대전이 고달프로 격렬한 내전의 연장, 공화진영 난민들이 군대에 자원 입대하였음 
- 내전의 참혹함은 종교적 이유 등으로 상대를 비인간화 하면서 잔인함이 더욱 증가 

매슈 레이놀즈(지음), 이재만(옮김), <번역>, 교유서가, 2017

"번역은 언어들을 섞는다. 번역은 언제나 외교술을 내포한다. 모든 번역은 집단 번역이다. 우리는 번역을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음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22쪽)

"이 생각은 번역이 '한 언어'라 불리는 한쪽에서 '의미'라 불리는 무언가를 집어다가 '한 언어'라 불리는 다른 쪽가지 옮겨놓는 그림을 그린다. 나는 이 그림을 '완고한 번역(관)'이라고 부를 것이다."(37쪽)

"단어는 언제나 새로운 맥락에서 사용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런 새로운 맥락에 맞게 번역되어야 한다."(61쪽)
"요컨대 우리는 단어들의 '상황'(또는 맥락)만을 고려하여 번역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번역의 목적도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이다."(70쪽)

"현대 번역 연구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이국화(foreignizing)' 아니면 '자국화(domesticating)'다"(97쪽)

"명백한 오류의 결과가 아닌 한, 이 다양성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이미 읽은 후라면, 당신 독법이 옳다고 확인해주는 번역을 과연 원하겠는가? 번역은 동일한 텍스트가 다른 독자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놀랍도록 상세하게 보여줄 수 있다."(108쪽)

"전 세계의 모든 번역서 중 약 40퍼센트의 원어가 영어다(미국 영어와 세계 영어 포함). 여기에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를 더하면 전체 번역서 원어의 4분의 3에 해당한다.(다만 러시아어의 비중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다소 낮아졌다.... 그 사이에 중국어, 아랍어, 포르투갈어는 각각 16위, 17위, 18위에, 힌디어는 더 아래 45위에 위치한다. 이 언어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입말 축에 들면서도 비교적 적게 번역된다."(149쪽)
"세계 종이책 번역의 약 40퍼센트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사이에서 분주히 이루어지고 있다."(151쪽)

그리고, 책의 내용을 적절히 요약하여 스스로의 번역 방식을 정리한 역자 후기가 인상적이다. 

"이 번역은 외교술을 내포한다. 나는 저자가 염두에 둔 영어권 독자들이 아닌 한국 독자들이 수용하고 이해할 만한 의미를 의식하여 번역문을 조정했다. 또 이 번역은 집단 번역이다. 초역은 내가 했으나 교정자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최종 번역문이 나왔다. 그리고 저자가 인용한 수많은 예를 옮기면서 한국어 번역본들을 참고했고, 그대로 인용하진 않았다 해도 그 번역본들에 큰 빚을 졌다. 나는 이국화 방법과 자국화 방법을 절충했다. 원문의 이국성을 온전히 재현하지도 않았고 남김없이 제거하지도 않았다(또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한 저자의 정체성은 번역론에 해박한 문학 전공자다. 특히 베르길리우스, 단테 알리기에리, 알렉산더 포프, 존 드라이든 등의 작품을 예로 드는 것으로 보아 고전과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학자임이 분명하다. 
 요약하면 나는 <첫단추> 시리즈 중 한권이 될 번역론 입문서를 한국의 대학생 이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서 교양서의 언어로 번역했다."(228~9쪽, 역자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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